AC.196.심화

 

2. 지식들(knowledges, [scientifica])

 

고대인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던 지식들[scientifica] knowledges [scientifica] unknown to the ancients, (AC.196)

 

지구의 지질학적 연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45, 6억 년을 기준으로 하면, 인간의 문명시대를 훨씬 넓게 잡아 1만 년으로 해도 고작 0.2초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사람들은 혹시 과거 지구 자체가 문명사적으로 몇 차례 리셋된 게 아니냐, 지금도 가끔 도저히 설명 불가한 것들이 땅속 고대 지층에서 발견되는 것들(오파츠, Out-Of-Place Artifacts)을 보면 말이다.’라고 합니다. 이런 오늘날 분위기에서 저 인용 본문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이 대목은 문자 그대로 읽으면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AC.196 고대인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던 지식들’은 오늘날 말하는 고고학, 지질학, 물리학, 유전학 같은 현대 과학 전반을 가리키는 말이라기보다, 스베덴보리 당시의 인간들이 고대인들보다 훨씬 더 방대한 자연 지식과 학문 체계를 갖게 되었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AC.196의 초점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지식을 사용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잃어버린 고대 문명’, ‘문명 리셋’, ‘설명하기 어려운 유물 같은 논의는 흥미로운 주제이기는 하지만, AC.196의 핵심과는 조금 다른 방향입니다. 설령 과거에 지금보다 더 발달한 문명이 있었다고 가정하더라도, 스베덴보리가 문제 삼는 것은 문명의 발전 정도가 아닙니다. 태고교회 사람들은 오늘날의 과학기술은 전혀 몰랐지만, 천적인 지각을 가졌습니다. 반대로 현대인은 엄청난 과학 지식을 가졌지만, 영적인 것에 대해서는 거의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AC.196의 기준은 기술 수준이 아니라 영적 상태입니다.

 

오히려 스베덴보리라면 이런 질문을 던질 것 같습니다. ‘그 고대 문명이 실제로 있었는가?’보다 왜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에 끌리는가?’입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현대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사례를 발견하면, 그것을 곧바로 영적인 것의 증거로 삼으려 합니다. 그런데 이것도 사실은 AC.194-196이 말하는 동일한 구조일 수 있습니다. 즉, ‘눈에 보이는 증거가 나와야 믿겠다’는 태도입니다. 방향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감각적 증거를 최종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영혼은 없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고대 유물 가운데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영혼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두 사람은 결론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보이는 증거가 최종 판단 기준’이라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AC.196은 바로 그 태도 자체를 문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AC.196을 읽으실 때는 고대인들이 몰랐던 scientia가 무엇이었는가?’보다 지식이 신앙의 종이 되는가, 아니면 주인이 되는가?’에 초점을 두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스베덴보리는 과학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당대 최고의 과학자였습니다. 문제는 과학이나 지식이 주님의 창조를 이해하는 도구’에서 주님을 재판하는 도구’로 바뀔 때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2026년은 오히려 AC.196을 더 절실하게 읽어야 하는 시대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스베덴보리 시대보다 훨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AI, 양자물리학, 유전체학, 우주망원경, 빅데이터 등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의 scientia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AC.196의 질문은 여전히 같습니다. ‘그 지식들이 우리를 더 겸손하게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더 자기 확신에 차게 만들고 있는가?’

 

결국 스베덴보리의 관심은 고대에 더 발전한 문명이 있었는가?’가 아니라 인간이 지식을 통해 주님께 더 가까워지는가, 아니면 자기 자신의 own을 더 신뢰하게 되는가?’에 있습니다. AC.196을 읽을 때 그 기준을 붙들고 있으면, 잃어버린 문명설이 사실이든 아니든 본문의 핵심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지식은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지식이 주님을 향해 열려 있지 않다면,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뱀의 독’은 18세기보다 2026년에 훨씬 더 정교한 형태로 작동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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