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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4/10/6, 눅22:39-46),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bygracetistory 2024. 10. 6. 09:14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39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40그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41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42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43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44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 45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46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눅22:39-46)

 

 

오늘 본문 말씀에는 주님께서 마지막 시험인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극한의 시험을 앞둔 주님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하나님이신 주님의 마음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러나 인간이신 예수의 두려움과 절망감이 어떤 것인지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앞으로 얼마나 지독하고 끔찍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지 내다보고 계셨고,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거기서 벗어나고 싶으셨습니다. 그토록 절망적인 상황에서 주님은 평소와 같이 날이 어두워지자 감람(橄欖, 올리브나무의 中譯인 橄欖을 우리말로 읽은 것. 실제로는 중국의 감람나무와 이스라엘의 올리브나무는 서로 다른 나무) 산으로 가십니다. 그것을 본문 39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39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주님은 아주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되어 십자가에 달리실 때까지 수없이 많은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그 시험에 대해 마가복음 1장 13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광야에서 사십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막1:13)

 

사람들은 이 시험을 주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직전 잠시 겪으신 시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한 구절의 말씀 속에는 주님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겪으신 모든 시험이 집약되어 있습니다. 말씀에서 40일은 주님의 모든 시험을 뜻하고, 들짐승과 함께 계시는 것은, 주님이 당신의 불완전한 인간을 통해 스스로 끌어들인 지옥의 공격들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 말고 주님이 당신의 시험에 대해 따로 말씀하신 적은 없습니다. 이런 사실로부터 우리는 주님이 모든 시험을 혼자 묵묵히 싸워 이기셨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로 가셨다고 합니다. 모든 시험을 홀로 견디신 주님이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는 제자들과 함께 가신 이유가 뭘까요? 주님은 이 시험을 통해 두 가지를 보여 주시려 한 것 같습니다. 하나는 인류의 보편적 구원과 개별적 구원에 대해서입니다, 보편적 구원이란 시험을 통해 주님 자신이 영화롭게 되시는 것, 즉 완전한 진리가 되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개별적 구원은 시험을 통해 신앙인들의 내면에서 선 없는 불완전 진리가 선을 동반한 완전 진리로 변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모든 시험에서 이기는 길은 사랑으로 드리는 기도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신 감람산, 즉 올리브 산은 주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선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감람산으로 가셔서 주님이 도착하신 곳은 어딜까요? 본문에는 지명을 말하지 않지만, 다른 복음서에서는 그곳을 겟세마네라고 합니다. 겟세마네에서 주님의 모습을 40절과 41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40그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41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주님이 겟세마네를 마지막 기도의 장소로 택하신 까닭은, 겟세마네(가트 슈마님)는 올리브기름(슈마님)을 짜는 틀(가트)을 말하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올리브기름은 사랑과 인애, 곧 체어리티(charity)의 선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당신 안에 계신 아버지와 전 인류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마지막 시험을 감당하시고자 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돌을 던지면 닿을 만한 곳에서 기도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돌을 던지면 닿을 만한 거리에 주님이 계신 것은,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부를 때 언제라도 오셔서 진리를 가지고 싸울 준비가 되어 있음을 뜻합니다. 돌은 주님에게서 나오는 신성한 진리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들에게 시험이 있을 때 주님은 진리로 오셔서 그들을 위해 싸우십니다. 그렇다고 주님이 무조건 우리들의 시험에 개입하시는 건 아닙니다. 우리가 먼저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주님은 인간의 자유로운 의사를 존중하시기 때문이지요. 어떻게 하는 게 도움을 청하는 걸까요? 주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이 오셔서 모든 유혹에서 우리를 구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시험에서 이기지 못하거나, 또는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이유가 뭘까요? 그것에 대해 ‘천국의 비밀’ 2535번 글은,

 

사람이 사랑과 믿음으로, 그리고 오직 천국과 영적인 것을 위해 기도한다면 그 기도에는 희망과 위로, 또는 어떤 내적 기쁨의 계시 같은 것이 나타난다. (이순철 역) If the man prays from love and faith, and for only heavenly and spiritual things, there then comes forth in the prayer something like a revelation (which is manifested in the affection of him that prays) as to hope, consolation, or a certain inward joy. (AC.2535)

 

라고 합니다. 이 글을 통해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하며, 그 결과로 오는 응답은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기도의 응답이 없는 이유는, 주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으로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나라를 바라보지 않고, 세상일에만 골몰하는 사람, 무슨 일이든 진리를 따르는 대신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은 주님보다는 자기 자신과 세상을 더 사랑하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 경우는 기도 응답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열심히 해도 시험에 잘 넘어지거나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자기의 삶을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주님의 뜻과 진리에 따라 이루어질 때 기도 응답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문제들이 풀리고, 주님에게서 오는 위로와 희망,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내적인 기쁨이 있습니다. 그것이 기도 응답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 근처에서 무릎을 꿇고, 다음과 같이 기도하십니다.

 

42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말씀에서 잔과 포도주는 진리를 뜻하지만, 여기서는 반대로 거짓을 뜻하고, 또한 시험을 뜻합니다. 왜냐하면 시험은 결국 거짓이 진리를 공격하고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하신 것은 어떻게 해서든 시험을 피하고 싶은 주님의 인간적인 욕구를 뜻합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에게 남아 있는 불완전한 인간이 하는 기도라는 말입니다. 만일 그 기도가 이루어졌다면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인류의 구원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반전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기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기도로 말미암아 주님은 지옥과의 싸움에서 완전히 이기실 수 있었습니다. 그때 당신 안에 있는 불완전한 인간의 뜻이 완전히 꺾이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43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44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

 

말씀에는 주님이 힘써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마치 핏방울처럼 땅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땀이 핏방울처럼 떨어지는 것은 주님이 지독한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 싸우시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절망과 고통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한편으로는 위로와 희망의 소리도 들렸습니다.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창15:1)

 

라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위로가 있었기 때문에, 주님은 죽을 것 같은 시험을 떨치고 일어나실 수 있었습니다.

 

※ 위 창세기 말씀에서 아브람은 주님을 표상(表象)합니다.

 

45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46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주님께서 기도를 마치시고 제자들에게로 가셨습니다. 45절에는 제자들이 슬픔으로 인하여 잠들었다고 했습니다. 시험이 깊을 때는 주님으로부터 버려진 것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지옥이 너무 두렵고 싸울 생각이 없습니다. 기도할 의지도 사라집니다. 일종의 자포자기와 같은 상태가 됩니다. 그런 상태가 제자들이 슬픔에 지쳐 잠이 든 상태입니다. 그렇더라도 주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한심해하거나 나무라지 않으시고, 포기하지도 않으십니다. 가만히 다가와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라고 하십니다. 시험을 이기신 능력의 주님이 우리를 깨우시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세상을 향하던 마음을 돌려 주님을 바라봅니다. 그것이 일어나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왜 주님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을까요? 그 이유는 주님의 영혼은 신성(神性, Divine)이셨지만, 어머니로부터 받은 인간, 인성(人性, human)은 순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시험을 통해 불완전한 인간을 신성하게 만드셔야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주님은 아버지이신 신성 앞에 자신을 모두 내려놓고 지극히 겸손하셨습니다. 그와 관련해 ‘참된 기독교’ 104번 글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의 신성과 인성이 하나로 되어가는 것이 비움(Exinanition)의 상태라면 신성과 인성의 합일(union) 그 자체는 영화(Glorification)의 상태이다. 주님은 세상에 계실 때 이 두 상태, 즉 비움의 상태와 영화의 상태로 계셨다. (이순철 역) The progress towards union was his state of exinanition [emptying himself], and the union itself is his state of glorification. when the Lord was in the world he was in two states, called the state of exinanition and the state of glorification. (TCR.104)

 

그러므로 주님이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신 것은 주님의 겸손과 비움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거룩하신 주님도 비움과 겸손을 통해 지독한 시험들을 이겨내시고 아버지와 분리된 인간을 벗고 아버지와 하나 된 인간이 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주님과 이웃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처럼 우리도 승리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해서 주님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배운 또 하나의 교훈은 기도할 때는 사랑과 믿음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헌금을 많이 하고, 이웃에게 베푸는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원하시는 사랑은 각자 직업에 관한 일과 일상의 일들을 성실하고 정직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 진리가 아닌 것을 멀리하는 것은 사랑 중에서도 첫 번째 사랑입니다. 한 손으로 악을 행하면서 다른 손으로 이웃을 사랑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얼굴에 난 종기를 그대로 두고 분을 바르는 거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사랑과 믿음과 겸손의 기도를 드리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그런 은혜가 모든 성도와 진리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함께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사53:12)

 

아멘

 

2022-12-11(D1)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

 

2024-10-06(D1)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2024-10-06(D1)-주일예배(2564, 눅22,39-46),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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