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마22:21) (2024/11/4)
1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2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 (눅23:1-2)
일단 저들의 고발은 사실이 아닙니다. 주님은 위 제목처럼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는 하셨지 금하신 적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바리새인들이 놓은 덫 때문에 할 수 없이 하신 말씀이시고요.
저들은 로마 총독 빌라도의 관심을 끌기 위해 소위 가짜 뉴스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평소 같으면 원수처럼 여기는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지금은 그의 주의를 끌기 위해 저들이 이러고 있는 이유는, 예수를 죽이고는 싶은데 유대가 로마의 식민지인 지금은 자기들한테는 사형집행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이 성전 뜰 안으로 무단침입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마침 이 유명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가 나왔으니 이 말씀의 속뜻, 그 내적 의미를 잠깐 살피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적어봅니다.
가이사, 즉 케사르(Caesar, 라틴)는 당시 로마 황제를 일컫는 호칭입니다. 헬라어 카이사르(Καῖσαρ)를 라틴으로 읽은 것이지요. 말씀에서 왕이나 황제는 진리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는 세상 진리, 법 따르는 것, 곧 자연적 삶을,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는 하늘 진리, 법 따르는 것, 곧 영적인 삶을 말합니다.
이 세상은 하늘을 담는 그릇입니다. 마치 우리 육체가 영을 담는 그릇인 것처럼, 또는 진리는 선을 담는 그릇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하신 이 말씀은 세상에서 세상 법도를 따라 자연적 삶을 살되 그 안에 하늘의 법, 곧 영적인 삶을 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즉 둘의 조화를 말씀하신 것이지, 결코 둘 중 하나를 포기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세상 법도를 따라 살되 반드시 그 안에 하늘의 법을 담으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선택, 무슨 행위를 했으면, 그 이유와 동기가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이어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하신 말씀처럼 말입니다.
아, 그리고 참고로, 말씀에서 ‘하나님’은 주님의 신성 중 진리 관련 호칭이고, ‘여호와’는 선 관련 호칭입니다. 주님의 신성은 선과 진리로 되어 있습니다. 이 호칭 관련, 창1과 창2를 유심히 비교해 보세요. 거기 보면 창1에는 ‘하나님’만 나오는 반면, 창2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나오는데요, 여기엔 정말 깊은 아르카나(라틴, Arcana, 秘義)가 있습니다. 나중에 기회 되면 나누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