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 : YouTube Through the Lens of Swedenborg

 

 

 

 

이번 영상에서 강문호 수도사가 소개하는 곳은 아토스의 이비론 수도원입니다. 아토스에 얽힌 전승과 이비론 수도원의 오래된 역사, 그리고 무엇보다 그곳에서 경험한 ‘손님 대접의 영성’을 소개하면서, ‘주는 것을 잊지 말고,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것도 잊지 말라’는 메시지로 나아갑니다. ‘스베덴보리의 렌즈’로 보면, 이번 영상은 앞선 몇 편과 조금 다른 의미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수도자의 극단적인 금욕이나 기이한 일화보다 ‘타인을 향하여 열리는 ’이 중심에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아토스를 바라보는 시선부터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상에는 ‘마리아의 정원’, 여성 출입 금지의 기원, 황후의 방문 등에 관한 여러 전승이 등장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그 자체로 동방정교회의 오랜 수도 전통과 신심을 이해하는 데 흥미로운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전승의 신성함이나 기적성 자체가 영적 진리를 보증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장소가 천 년 이상 보존되었고, 수많은 성물과 고문서를 간직하고 있으며, 수많은 수도자가 그곳에서 기도했다는 사실은 존중할 만하지만, 그것이 곧 그 장소 자체를 거룩하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에게 거룩함의 근원은 언제나 주님이며, 사람이나 장소, 그리고 물건은 주님의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삶으로 나타내는 만큼만 거룩함에 참여합니다. 따라서 ‘마리아의 정원’이라는 전승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그곳에서 사람들이 어떤 사랑으로 살아가는가?’입니다.

 

이 점에서 영상 후반부의 ‘손님 대접’ 이야기가 오히려 이번 영상의 영적 중심에 가깝습니다. 가뭄과 흉년 때문에 수도원 자신들의 먹을 것조차 부족해지자 수도사들은 방문객에게 무료로 음식을 제공하던 관행을 중단하기로 합니다. 인간적으로는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결정입니다. 그런데 한 가난한 방문객이 찾아와 ‘ 가지를 잊지 말라. 주는 것과 받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주면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것을 믿으라’는 취지의 말을 남깁니다. 이후 수도원은 다시 창고를 열어 가난한 사람과 나그네에게 음식을 나누었고, 그것이 이비론 수도원의 중요한 전통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는 스베덴보리의 신학과 매우 아름답게 만나는 지점이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천국의 삶은 근본적으로 ‘받아서 주는 ’입니다. 모든 선과 진리, 모든 사랑과 생명은 인간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흘러들어옵니다. 인간은 그것을 자기 것으로 움켜쥐기 위해 받는 존재가 아니라, 받아서 다시 이웃에게 흘려보내도록 지음받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영상의 ‘주는 것과 받는 것을 잊지 말라’는 말은 단순한 자선의 격언보다 훨씬 깊게 읽을 수 있습니다. ‘받음’과 ‘’은 서로 반대되는 두 행동이 아니라 하나의 영적 순환입니다. 주님에게서 받고, 이웃에게 흘려보내며, 그렇게 흘려보내는 가운데 다시 주님에게서 받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주의점도 있습니다. 이것을 ‘내가 남에게 하나를 주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열을 주신다’는 식의 보상 원리로 이해하면 금세 본래 의미에서 벗어납니다. 주는 행위가 더 큰 물질적 복을 받기 위한 수단이 되는 순간, 겉으로는 체어리티처럼 보여도 그 안에는 자기 사랑이 숨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었으니 하나님께서 나에게 갚으실 것이다’가 아니라 ‘내가 가진 것부터가 주님에게서 것이므로 필요한 이웃에게 흘려보내는 것이 마땅하다’가 더 깊은 질서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다시 주시는 것도 반드시 돈이나 재산의 증가를 뜻하지 않습니다. 선을 사랑하는 마음, 이웃을 볼 수 있는 눈, 더 깊은 평안과 지혜, 주님을 신뢰하는 마음 역시 주님에게서 오는 훨씬 귀한 선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손님이 오지 않는 집에는 천사도 오지 않는다’는 수도원의 말도 문자 그대로 어떤 신비한 법칙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가리키는 정신은 아름답습니다. 낯선 사람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식탁을 열고, 자기에게 속한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행위는 인간을 자기 자신에게서 밖으로 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의 언어로 말하면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이 모든 것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는 운동이라면, 체어리티는 받은 선을 이웃에게 유용하게 흘려보내는 운동입니다. 그래서 환대는 단순한 예절이 아니라 잘 행해질 때 ‘use’, 곧 쓰임의 한 형태가 됩니다.

 

영상에서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대접하다 천사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연결하는 것도 이런 의미에서 읽으면 좋습니다.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은 자기 장막 앞을 지나가는 이들을 보고 먼저 달려나가 맞이하고, 물과 음식과 쉼을 제공합니다. 속뜻에서 더 깊은 의미들이 있겠지만, 겉으로도 이 장면에는 매우 아름다운 질서가 있습니다. ‘먼저 대접하고, 나중에 그들이 누구였는지를 알게 됩니다.’ 상대가 천사인 줄 알았기 때문에 대접한 것이 아닙니다. 먼저 환대했습니다. 바로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체어리티는 ‘가치 있는 사람인지 확인한 사랑하는 ’이 아니라, 선과 진리에 따라 필요한 쓰임을 행하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수도원이라는 장소를 넘어 우리 일상으로 곧바로 이어집니다. 수도원에 들어가지 않아도 식탁 하나를 여는 것이 수도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는 것도 수도가 될 수 있고, 어려운 사람에게 시간과 물질을 내어주는 것도 수도가 될 수 있으며, 자기 능력과 지식을 필요한 사람에게 사용하는 것도 수도가 될 수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의 렌즈가 수도생활을 바라볼 때, 특히 중요하게 보는 지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얼마나 세상에서 멀리 떨어졌는가?’보다 ‘얼마나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주님의 선을 이웃에게 흘려보내는가?’가 더 본질적인 질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번 영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천 년 된 박물관도, 아토스의 신비로운 전승도, 여성의 출입이 제한된 독특한 수도 전통도 아닙니다. 오히려 굶주림이 닥쳤을 때 닫으려 했던 ‘창고를 다시 여는 장면’입니다. 수도원의 거룩함이 박물관 속 오래된 성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배고픈 사람에게 내어주는 한 조각의 빵에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외적 성물은 과거의 거룩한 삶을 기억하게 할 수 있지만, 체어리티는 지금 여기에서 주님의 사랑을 살아 있게 합니다.

 

다만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스베덴보리는 ‘주는 ’ 자체도 분별 없이 절대화하지 않습니다. 체어리티는 단순히 누구에게나 무엇이든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실제로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지혜롭게 살피는 사랑입니다. 악을 돕는 것은 체어리티가 아니며, 상대의 잘못을 강화하는 도움 역시 참된 선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환대와 나눔에는 사랑과 함께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단순한 자선과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체어리티 사이의 중요한 차이입니다.

 

이번 영상에서 강문호 수도사가 아토스의 웅장한 역사와 희귀한 보물들을 한참 이야기하지만, ‘스베덴보리의 렌즈’로 끝까지 따라가 보면 결국 가장 빛나는 보물은 다른 데 있는 듯합니다. 그것은 ‘주는 것과 받는 것을 잊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문장을 조금 더 깊게 바꾸어 읽어볼 수 있습니다. ‘주님에게서 받았음을 잊지 말고, 받은 것을 이웃에게 흘려보내기를 잊지 말라.’ 그렇게 읽는 순간 이비론 수도원의 오래된 환대 이야기는 특정 수도원의 미담을 넘어 그리스도인의 일상 전체를 비추는 말이 됩니다.

 

결국 참된 수도는 세상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느냐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외적 고요가 내적 고요를 도울 수 있고, 외적 청빈이 자기 사랑을 돌아보게 할 수도 있으며, 수도원의 규율과 전통이 영적 훈련에 유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목적은 아닙니다. 목적은 사람이 주님에게서 오는 선과 진리를 받아 자기 것으로 가두지 않고, 삶의 쓰임으로 이웃에게 흘려보내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영상에서 우리가 가져갈 가장 아름다운 문장은 어쩌면 이것일 것입니다. ‘받은 것은 것이어서 받은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선이 나를 지나 다른 사람에게까지 흘러가도록 받은 것입니다.’ 그 흐름이 막히지 않는 곳, 스베덴보리의 렌즈로 보면 바로 그곳에서 천국의 질서가 시작됩니다.

 

 

 

SY.81, 강문호 수도사, ‘아토스의 티혼 수도사, 금욕과 거듭남’ (20200105)

※ ‘SY’ : ‘YouTube Through the Lens of Swedenborg’ 이번 영상에서 강문호 수도사는 아토스산 수도 공동체를 방문했을 때, 깊은 인상을 받았던 한 러시아 수도사의 삶을 소개합니다. 자동자막에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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