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49.심화
23보라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빛이 없으며, 25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 (렘4:23, 25) I beheld the earth, and lo, it was void and emptiness, and the heavens, and they had no light. I beheld and lo there was no man, and all the birds of the heavens were fled (Jer. 4:23, 25).
이 구절은 겉으로 보면 단순히 폐허와 심판의 장면처럼 보이지만, AC.49의 문맥에서는 ‘거듭남 이전, 혹은 교회가 완전히 무너진 상태, 곧 ‘내면의 빛이 꺼진 상태’’를 매우 선명하게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렘4:23, 25의 ‘혼돈, 공허, 빛 없음, 사람 없음, 새가 날아감’은, 사람 안에서 진리와 선, 이해와 의지, 그리고 그 작용들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를 단계적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먼저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다’입니다. 여기서 ‘땅’(earth)은 앞서 계속 보신 것처럼 ‘사람, 혹은 그의 삶의 자리’를 뜻합니다. 그리고 ‘혼돈’(void)과 ‘공허’(emptiness)는 창세기 1장의 첫 상태와 동일한 표현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질서가 완전히 무너진 상태, 선과 진리가 전혀 자리 잡지 못한 상태’로 봅니다. 즉, 단순히 부족한 것이 아니라, ‘아직 아무것도 정돈되지 않은 상태’, 혹은 다시 무너져 그 상태로 돌아간 상태입니다.
그다음 ‘하늘에 빛이 없다’입니다. ‘하늘’(heavens)은 ‘속 사람, 내적인 영역’, ‘빛’(light)은 ‘진리의 인식과 이해’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 표현은 ‘사람 안의 내적 영역에서 더 이상 진리가 비추지 않는 상태’, 다시 말해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주님의 뜻인지 ‘분별할 빛이 완전히 꺼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것이 매우 심각한 상태입니다. 왜냐하면 외적인 문제보다, ‘내적 빛이 꺼지는 것이 더 근본적인 붕괴’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사람이 없으며’가 나옵니다. 여기서 ‘사람’(man, homo)은 단순한 인간 존재가 아니라, 스베덴보리에게서는 ‘진리와 선이 결합된 상태, 곧 ‘참된 인간성’’을 뜻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없다’는 것은 사람이 물리적으로 없다는 말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더 이상 ‘사람다운 상태’, 곧 진리와 선의 결합이 없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하면, 겉으로는 사람처럼 살아도, 영적으로는 ‘사람이 아닌 상태’입니다.
마지막으로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다’입니다. ‘새’(birds)는 앞서 계속 보셨듯이 ‘이성적이고 지적인 것들, 곧 생각과 이해의 작용’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 새들이 ‘날아갔다’는 것은, 단순히 약해진 것이 아니라, ‘완전히 사라진 상태’입니다. 즉, 더 이상 진리를 생각하거나 분별하는 능력이 작동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무지가 아니라, ‘진리를 생각하려는 힘 자체가 떠난 상태’입니다.
이 네 가지를 하나로 묶으면 이렇게 됩니다. ‘삶의 자리(땅)가 무너지고 → 내적 빛이 꺼지고 → 참된 인간 상태가 사라지고 → 생각과 분별의 기능까지 떠난 상태’입니다. 이것이 바로 ‘완전한 황폐’, 곧 스베덴보리가 자주 말하는 ‘vastation’(황폐)의 상태입니다.
이걸 실제적으로 풀어보면 이렇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처음에는 진리를 알고, 양심도 있고, 선을 행하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점점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에 사로잡히면서, 진리를 무시하고, 양심을 거스르고, 결국에는 무엇이 옳은지도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는, ‘옳고 그름 자체가 의미 없게 느껴지고’, 마음도 굳어지고, 생각도 흐려집니다. 이것이 바로 이 구절이 말하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왜 이런 구절이 AC.49에 등장하느냐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무서운 상태를 보여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왜 주님이 태고교회와 같은 직접적인 방식으로 더 이상 말씀하지 않으시는가’를 설명하는 배경이 됩니다. 인간이 이처럼 내적으로 어두워진 상태에서는, 설령 주님이 직접 나타나셔도 그것을 바르게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다른 방식, 곧 말씀과 진리를 통한 인도라는 방식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가장 위험한 상태는 고통받는 때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 더 이상 느끼지도, 생각하지도 않는 상태입니다.’
‘렘4:23, 25는 사람 안에서 진리의 빛과 선의 상태,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고 생각하는 기능까지 모두 사라진 ‘영적 황폐’의 상태를 묘사한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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