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므온의 축복과 선지자 안나 이야기
34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35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36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37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38마침 이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39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40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눅2:34-40)
시므온은 순종을 뜻하고 또한 신앙을 뜻한다. 왜냐하면 신앙은 사람이 계명에 순종하고 신앙에 따라 행할 때 그의 안에서 신앙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기 전에는 사람들은 말씀과 교회의 교리와 설교를 통해 습득한 지식을 신앙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이 그러한 지식들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신앙이 아니고 단지 기억에서 나오는 생각일 뿐이다. 그래서 그 안에는 의지에 속한 것은 없고, 그러므로 사람에 속한 것은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의지는 곧 그 사람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신앙을 행동으로 옮길 때, 즉 순종할 때 신앙은 의지 속으로 들어가고 그렇게 해서 사람 안에서 신앙이 된다. (계시록 해설 443:3, 이순철 역)
※ 위 계시록해설 443:3번 글에 대한 Ager 영역본은 아래와 같으며, 이는 계시록 7장 7절 말씀에 대한 주석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Simeon” signifies obedience he also signifies faith, for faith becomes faith in man when he obeys and does the commandments; before this is done the knowledge of such things as man has drawn from the Word, from the doctrine of the church and from preaching, appears as faith, but this is not faith until man does these things; until then it is merely a matter of thought from the memory, in which there is nothing of the will, consequently nothing of the man, for the will is the man himself; it is therefore when a man does this, that is, obeys, that it enters the will, thus the man himself and becomes faith. (AE.443:3)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계7:7)
※ 본 설교부터는 서울 새 교회로 부임(2016년 12월) 후 하신 설교입니다.
그동안 출애굽기와 누가복음에 대한 말씀을 한주씩 걸러 전해드렸는데요,
※ 이상은 이순철 목사님의 청주 새 교회 시절입니다.
며칠 성탄절과 새해 예배가 있어서 시기에 맞는 말씀을 전하다 보니 누가복음 설교를 잠시 쉬었습니다. 오늘은 다시 누가복음 2장 34절에서 40절까지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마리아와 요셉 부부는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유대교회의 율법에 따라 성전에서 제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아기 예수님을 보고 주님을 찬송합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마리아와 요셉 부부는 타락한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교회의 잘못된 교리와 타협하지 않는 순수한 사람들을 나타냅니다. 마리아와 요셉 부부를 그렇게 이해하는 까닭은 말씀에서 그들을 갈릴리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나사렛은 갈릴리에 속한 지역입니다.
갈릴리는 속뜻으로 이방인을 나타냅니다. 이방인이란 어떤 사람들입니까? 이방인은 교회 밖의 사람들이며, 또는 교회 안에 있지만, 교회의 잘못된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타락한 교회 입장에서 보면, 그들의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이방인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런 진실한 신앙인들에게 참된 진리와 선을 보내주십니다. 따라서 마리아와 요셉은 신실한 신앙인들의 내면의 교회를 이루는 진리와 선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주님은 그렇게 내면에 교회를 이루고 있는 신실한 신앙인들 속으로 오십니다. 그것이 요셉과 마리아 부부에게 아기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리아 부부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오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은 본질적으로 진리 자체이신 분입니다. 그런데 단순한 진리가 아니세요. 선 자체이신 여호와로부터 나오는 진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본질적으로 선을 동반한 진리이십니다. 따라서 마리아 부부가 예수님을 데리고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은 이전처럼 진리만 가지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진리와 선을 함께 가지고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신앙과 신앙에 따르는 삶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신앙인들이 그렇게 신앙과 삶의 진실한 행위로 예배를 드릴 때, 그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나아옵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을 통해 참된 진리를 만나게 되는 것이지요. 왜 그럴까요? 신앙인들의 삶을 통해 드러나는 진리가 스스로를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을 만난 시므온이나 선지자는 그렇게 참된 진리를 만난 사람들을 나타냅니다. 그러니까 마리아와 요셉 부부와 같은 신실한 사람들을 통해 진리이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바로 시므온과 안나입니다. 34절에서 시므온이 마리아에게 말했습니다.
34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시므온이란 이름은 히브리말로는 귀로 ‘듣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시므온은 ‘듣는 자’, 즉 진리에 순종하는 사람을 나타냅니다. 진리를 그냥 믿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요, 신앙에 따라 선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참 진리를 만날 때, 그것이 진리라는 것을 바로 알아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 안의 선한 애정이 진리를 끌어당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므온은 아기 예수님을 만났을 때, 바로 알아봤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에게 말합니다.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라고 말이지요.
한글 성경에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라고 되어 있는데, 영어 성경에는 ‘이 아이는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넘어진 자를 다시 일으키기 위하여 세워졌다’라고 말합니다. 많이 다르죠. 이 말씀은 주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시기 전 이스라엘로 표상되는 영적 교회 사람들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마치 애굽의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지옥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벗어날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오시기 전의 사람들은 거듭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거듭난다고 해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세상에 오셨습니다. 세상에 오셔서 지옥의 공격을 홀로 막아내시고, 당신의 백성들을 되찾으신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구속입니다. 그래서 시므온은 ‘이는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라고 하구요,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라고 말했습니다.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라는 말은 지옥의 공격을 홀로 막아내셨다는 뜻입니다. 시므온이 35절에서 계속해서 말합니다.
35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칼이 마음을 찌르듯 한다고 했는데, 칼은 진리를 뜻합니다. 그리고 마음은 사람의 의지를 나타냅니다. 그러면 ‘마음의 생각’이란 무엇일까요? 우리 의지에서 나오는 생각을 말합니다. 이러한 의미들을 종합해 볼 때,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라는 말은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진리의 빛이 우리의 의지 속을 비추어 그 속에 있는 것들을 드러나게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이 어떤지는 알지만 의지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런데 의지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아는 것이 신앙인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의지는 곧 생명이고, 생명이 맑아지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 의지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알 수가 없고, 오직 주님으로부터 오는 진리의 빛을 통해서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진리를 주셔서 그것을 통해 우리 의지나 애정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게 하십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를 개혁하시고 거듭나게 하십니다. 주님은 바로 그것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시므온은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다음 36절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36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서 만난 사람은 시므온 말고 또 한 사람이 더 있었는데, 바로 ‘안나’라는 이름의 여인이었습니다. 시므온이 진리에 순종하는 사람이었던 것처럼 안나 역시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면, 안나가 이스라엘의 열두지파 중 ‘아셀’ 지파의 딸이라는 것과, 선지자였다는 사실로 알 수 있습니다. 말씀에서 아셀 지파는 애정을 뜻하고, 선지자는 교회의 교리를 나타냅니다. 선지자는 교리를 가르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안나가 진리에 대한 애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안나는 교회의 교리를 배우기를 힘쓰고, 교리가 이끄는 데로 선하게 살았던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안나가 남편과 결혼해 일곱 해를 살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남편은 누구를 말할까요? 말씀에서 남편과 아내는 각각 진리와 선을 뜻합니다. 따라서 안나가 남편과 결혼한 것은 진리에 대한 애정과 진리가 서로 만나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 진리와 선이 결합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진리와 선이 결합해 하나가 되었으니, 그것은 거룩한 상태입니다. 그것을 본문에서는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숫자 7은 거룩한 상태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안나가 남편과 함께 산 기간은 거듭남의 첫 번째 상태를 나타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거듭남의 첫 번째 상태와 두 번째 상태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거듭남의 첫 번째 상태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진리에 복종, 선으로 나아가는 단계입니다. 진리에 복종하려면 진리에 반하는 것들과 싸워야 합니다. 좋지 않은 습관을 끊기 위해 자신과 싸워야 하고, 자기의 이익과 이웃의 이익이 서로 충돌할 때,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기 위해서 치열하게 갈등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진리의 상태에서 선의 상태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거듭남의 두 번째 상태가 시작됩니다. 거듭남의 두 번째 상태가 되면, 진리 행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고, 오히려 기쁨을 느낍니다. 일단 선의 상태로 들어가면, 내면에서 선한 의지가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듭남의 두 번째 상태에서는 억지로 진리를 행하지 않고, 내면에서 일어나는 선한 애정에 따라 행하고요, 그래서 그것이 기쁩니다. 37절은 안나의 두 번째 거듭남의 상태에 대한 설명입니다.
37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방금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거듭남의 두 번째 상태에서는 진리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거듭납니다. 그런데 처음 그 상태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선은 있는데 진리가 없음을 절실히 느낍니다. 혹시 지난주 출애굽기 19장 설교 내용을 기억하십니까? 거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광야에 도착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것은 영적 교회의 사람들이 거듭남의 두 번째 상태, 즉 선의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즉 광야는 진리가 아직 심어지지 않은 선을 뜻합니다. 본문에 안나가 과부로 사는 것이 그런 상태입니다. 선한 의지는 있는데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이제까지 안나가 실천했던 진리는? 하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저도 똑같은 의문을 가졌습니다. 이 말씀에 대해 묵상하면서 얻은 결론은 이렇습니다. 거듭남의 첫 번째 단계에서는 주님으로부터 선을 행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고, 일반적인 진리만 배운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신앙만으로는 구원받지 못하고, 신앙과 삶의 행위가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 악을 먼저 끊고, 그다음에 선을 행해야 한다는 것 같은 진리들입니다. 그렇게 보면 거듭남의 첫 번째 단계는 선을 행하기보다는 주로 자신의 행위 가운데 숨어있는 악과 거짓을 버리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선을 행하되 소극적으로 행하는 단계입니다. 그래서 그때 주님으로부터 받는 진리는 대부분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기 위해 필요한 일반적인 진리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듭남의 두 번째 상태로 처음 들어간 사람들은 선한 의지는 있는데 선을 행하는 방법에 대한 진리가 없음을 느낍니다. 다시 말하면 어떻게 선을 행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가 안나가 과부로 지내는 상태입니다. 과부는, 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진리는 있는데 선이 없거나, 아니면 선은 있는데 진리가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여기 안나의 경우는 선은 있는데, 진리가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안나를 과부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면 안나가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는 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 이 표현은 안나가 과부가 된지 팔십사 년이 지났다는 말이 아니라 안나의 현재 나이가 팔십사 세라는 말이겠지요?
이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숫자 4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84는 4의 배수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숫자 4의 의미와 같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숫자 4는 하나의 상태가 완전히 끝나 새로운 상태가 시작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는 말은 선만 있고 진리는 없는 상태가 끝나고 새로운 상태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새로운 상태는 어떤 것일까요? 주님으로부터 진리가 흘러들어오기 시작하는 상태입니다. 그것이 ‘안나’가 진리이신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입니다. 말씀에는 ‘안나’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금식과 기도로 세월을 보냈다고 합니다. 금식은 애통해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면 ‘안나’는 무엇을 애통해했을까요? 자기 안에 선만 있고 진리가 없음을 슬퍼했습니다. 그러면 기도는 무엇입니까? 주님께 진리를 구하는 것입니다. ‘안나’는 그러한 과정을 거쳐 비로소 아기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때 주님으로부터 선을 동반한 진리가 그에게 흘러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안나’에게 있어 새로운 시작입니다. 38절에서는
38마침 이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이 말씀은 주님이 주시는 진리를 통해 거듭남의 두 번째 상태를 시작하는 사람들을 나타냅니다. 그들이 주님께 감사를 드리고, 구원을 소망하는 이웃들에게 진리를 가르치는 모습입니다. 여기서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는 예수님, 즉 진리에 대해 가르쳤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안나와 같이 거듭남의 두 번째 상태로 들어간 사람이라야 진리를 제대로 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우님들 가운데도 거듭남의 두 번째 단계에 도달한 분이 계실 수 있겠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아직 누구에게 진리를 가르치기는 많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진리라고 말하는데 진리 아닌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진리 안에는 능력이 없습니다. 진리 안에 선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안나는 주님을 만난 다음에야 비로소 이웃들에게 주님에 대해, 즉 진리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39절에서는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에 대한 정결 예식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는 모습을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습니다.
39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이 말씀은 교회의 마지막 때 교회 안의 신실한 신앙인들이 어떻게 구원받는지를 보여 줍니다. 주님은 낡고 병든 교회를 폐하시고 새로운 교회를 세우실 때, 한동안은 이전 교회의 예배를 그대로 존속시키십니다. 마리아와 요셉 부부가 율법에 따라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 부부와 같은 신실한 사람들을 모아 새로운 교회를 준비하십니다. 새로운 교회를 세우려면 무엇이 있어야 합니까? 교리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본 동네 나사렛’은 새로운 교회의 교리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이방인들에게 보내주시는 새로운 교회의 교리가 곧 ‘본 동네 나사렛’입니다. 왜냐하면 ‘동네’는 속뜻으로 교회의 교리를 나타내고, 나사렛은 갈릴리 지역에 있는 곳이며, 그래서 이방인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신실한 신앙인들의 내면의 교회로 오신 주님은 처음에는 아주 연약한 주님이세요. 주님이 연약한 것이 아니고요, 주님을 받아들이는 우리 신앙이 연약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이 점점 깊어지면 그에 따라 우리 안에 계신 주님도 점점 자랍니다. 진리에 능력이 생기고, 지혜가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40절에서는,
40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에게 참된 진리와 거짓 진리를 분별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축복입니다. 주님으로부터 그렇게 큰 은혜를 입었으니 이제 그것을 주님께 돌려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주님께서 기뻐하실까요? 인간의 때가 묻지 않는 순수한 진리와 선으로 돌려드려야 합니다. 마치 마리아와 요셉 부부가 정결 예식의 기간이 찬 다음 아기를 바친 것처럼 그렇게 순수한 선과 진리로 주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그런데 순수한 진리와 선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결혼 후 7년 만에 과부가 된 선지자 ‘안나’는 그것을 위해 84세가 되도록 금식과 기도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한 노력과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가끔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왜 주님은 좀 더 빨리 나를 선하게 만들어주시지 않으시는가? 선에 대한 나의 열정을 모르시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아마 아직은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도 안나처럼 자신에게 진리와 선이 없는 것을 슬퍼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 간절히 매달려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선을 동반한 진리로 오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적인 금식과 기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서 주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주님이 준비 중이신 모든 새 교회가 바로 설 것이고, 부흥될 것입니다. 주님의 그런 은혜가 새 교회 모든 식구들에게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6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7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8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시40:6-8)
아멘
원본
2017-01-22(D1)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
설교
2023-03-12(D1)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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