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6.심화

 

4. ‘22:37-40

 

37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22:37-40)

 

 

이 구절이 AC.36에 인용된 이유는,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단순히 많은 계명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두 계명이 아니라, 사실상 말씀 전체와 신앙 전체를 떠받치는 기초라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마가복음의 인용이 신앙의 핵심이 사랑이라는 점을 보여 준다면, 마태복음의 이 구절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든 교리와 모든 말씀의 내용이 결국 이 두 사랑 안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AC.36에서 스베덴보리는 신앙을 단순한 생각이나 교리 체계로 이해하는 것을 비판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신앙을 무엇을 믿는가’의 문제로 생각하지만, 주님께서는 어떻게 사랑하는가’의 문제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첫째 계명으로 하나님 사랑을, 둘째 계명으로 이웃 사랑을 말씀하시고, 그다음 매우 중요한 선언을 하십니다.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율법과 선지자’는 단순히 구약성경의 두 부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말씀 전체, 그리고 신앙의 모든 보편적 교리를 뜻하는 표현으로 이해합니다. 다시 말해 성경의 수많은 계명과 교훈, 예언과 역사, 교리와 진리가 결국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가르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AC.36의 핵심 주장과 정확히 연결됩니다. 신앙은 사랑과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이 가르치는 모든 내용이 결국 사랑을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교리를 많이 알고,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신학적으로 정교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결과가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는 말씀의 목적에 도달하지 못한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둘째 계명에 대해 ‘그와 같다’고 말씀하신 것도 중요합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서로 분리된 두 종류의 사랑이 아닙니다.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웃을 사랑하게 되며,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랑의 근원이신 주님을 향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둘은 하나의 생명의 안과 밖, 원인과 결과와 같은 관계입니다.

 

스베덴보리가 AC.36에서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신앙의 모든 교리는 사랑을 위해 존재합니다. 진리는 사랑으로 인도하기 위해 주어지고, 신앙은 사랑 안에서 완성됩니다. 그러므로 사랑 없는 신앙은 목적 없는 수단과 같고,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와 같습니다.

 

결국 마22:37-40 AC.36에 인용된 이유는,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신앙의 일부가 아니라 신앙 전체의 중심이며, 더 나아가 말씀 전체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는 말씀은 모든 진리와 모든 교리가 결국 사랑을 향해 매달려 있다는 뜻이며, 따라서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사랑 없는 신앙은 참된 신앙이 아니다’라는 가르침을 가장 직접적으로 뒷받침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AC.36, 창1:14-17, '신앙은 순종이다 : 사랑 없는 믿음은 신앙이 아니다'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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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6, 심화 3, ‘막12:29-31’

AC.36.심화 3. ‘막12:29-31’ 29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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