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07.심화

 

1. ‘AC.265

 

남편(man [vir])이 이성(the rational, 합리적 능력)을 말한다는 게 본 장 6절에 나오는데요, 거기 보면, 여자는 자기와 함께 있는 자기의 남자(her man)에게 주었고, 그는 먹었는데, 이는 그도 동의했다는 의미입니다. 같은 내용이 158번 글에 나오는 남자(the man)에 대한 말로도 분명한데요, 거기서 그는 지혜와 지성의 사람(one who is wise and intelligent)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여기 나오는 남자(man)는 그와는 달리 이성을 의미하는데, 왜냐하면, 지식의 나무, 곧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지혜와 지성이 파괴된 결과,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성이라는 건 지성의 모방, 말하자면 겉모습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That by “man” [vir] is signified the rational appears from verse 6 of this chapter, in that the woman gave to her man with her, and he did eat, by which is meant his consent; and the same is also evident from what was said of the man in n. 158, where by him is meant one who is wise and intelligent. Here however “man” denotes the rational, because in consequence of the destruction of wisdom and intelligence by eating of the tree of knowledge, nothing else was left, for the rational is imitative of intelligence, being as it were its semblance. (AC.265)

 

AC.207에서 위 AC.265를 인용하는 이유

 

 

AC.207에서 스베덴보리가 AC.265를 인용하는 이유는, 창세기 3 6절의 ‘남편도 함께 먹었다’는 표현이 단순히 아담이라는 한 개인의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안의 ‘이성 파트(rational)가 유혹에 동의한 사건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창세기 3장의 내적 의미를 따라가면, 뱀은 감각 파트(sensuous part), 여자는 own, 곧 자신의 proprium에 속한 애정과 의지를, 남자는 이성 파트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타락은 감각이 제안하고, own이 그것을 좋아하며, 마지막으로 이성이 그것에 동의하는 순서로 진행됩니다. AC.207이 ‘남편이 먹었다는 것은 이성의 동의를 의미한다’고 말하는 근거가 바로 AC.265입니다.

 

특히 AC.265에서 중요한 것은 ‘이성은 지성의 모방물이며, 마치 그것의 형상 같은 것(the rational is imitative of intelligence, being as it were its semblance)이라는 설명입니다. 원래 인간의 이성은 지성과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지성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의 빛 안에서 사물을 보는 능력이고, 이성은 그 지성을 표현하고 정리하며 적용하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이성이 지성을 섬깁니다.

 

그러나 창3에서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스베덴보리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음으로 인해 지혜와 지성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이성만 남게 되었다(AC.265)라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말입니다. 원래 태고교회 사람들은 지각(perception)을 통해 진리를 알았습니다. 사랑 안에서 직접 진리를 보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타락 이후에는 그 지각과 지성이 약해지고, 대신 이성이 앞에 나서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AC.265는 ‘남자’라는 단어가 창2와 창3에서 미묘하게 다르게 사용된다고 설명합니다. 창2에서는 아직 지혜와 지성이 살아 있으므로 ‘남자’가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창3에서는 이미 지혜와 지성이 손상되었기 때문에 ‘남자’는 더 이상 그런 높은 상태를 의미하지 않고, 단지 이성적 부분만을 의미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AC.207 AC.265를 인용하여, 선악과 사건의 마지막 단계가 무엇인지를 보여 줍니다. 그것은 단순히 감각의 유혹이나 own의 욕망이 아닙니다. 인간 안의 이성이 그것을 승인하는 순간입니다. 감각은 제안할 수 있고, 욕망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성이 동의하지 않으면 아직 완전한 타락은 아닙니다. 그런데 ‘남편도 먹었다’는 것은 이성이 마침내 자기 own의 편에 섰다는 뜻입니다.

 

생각해 보면, 이것은 인간 경험에서도 매우 익숙한 과정입니다. 처음에는 어떤 욕망이 생깁니다. 그다음에는 그것이 좋아 보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성이 등장하여 ‘이 정도는 괜찮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사실 이것이 더 옳다’고 정당화합니다. 이 순간 욕망은 단순한 충동이 아니라 하나의 확정된 선택이 됩니다.

 

그래서 AC.207 AC.265를 인용하는 이유는 매우 분명합니다. 창3의 타락은 감각이나 애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이성까지 그것에 동의한 사건임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성은 원래 지성을 섬기도록 창조되었지만, 지성이 무너지면 자신이 주인이 되려고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비극적 전환을 ‘남편도 먹었다’는 짧은 표현 속에서 읽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AC.207, 창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AC.207-210)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And the woman saw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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