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22.심화

 

4. ‘63:7-9

 

7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그의 찬송을 말하며 그의 사랑을 따라, 그의 많은 자비를 따라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을 말하리라 8그가 말씀하시되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거짓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녀라 하시고 그들의 구원자가 되사 9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의 사랑과 그의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사63:7-9) I will make mention of the mercies of Jehovah; he hath requited them according to his mercies, and according to the multitude of his mercies; and he became their savior. In all their affliction he was afflicted, and the angel of his faces saved them; in his love and in his pity he redeemed them (Isa. 63:7–9).

 

 

이 구절을 AC.222에서 인용한 이유는, ‘여호와의 얼굴(the faces of Jehovah)이 심판이나 진노가 아니라 사랑(love), 자비(mercy), 긍휼(pity), 구원(salvation)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창3:8의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숨었다’는 구절을 설명하면서, 먼저 말씀 전체에서 ‘여호와의 얼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장 아름다운 증거 가운데 하나로 이사야 63장을 인용합니다.

 

특히 그는 ‘자기 앞의 사자(the angel of his faces)라는 표현에 주목합니다. 문자적으로는 마치 주님 앞에 서 있는 어떤 천사를 말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에게 이것은 단순히 한 천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의 사랑과 자비가 인간에게 다가오는 신적 임재를 의미합니다.

 

본문 전체를 보면 ‘자비’, ‘사랑’, ‘긍휼’, ‘구원’이라는 단어들이 반복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문맥 속에서 ‘자기 앞의 사자’가 등장합니다. 이것은 말씀 자체가 이미 ‘얼굴’이라는 표현을 자비와 사랑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특히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라는 구절은 매우 감동적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주님을 멀리 떨어져 인간을 심판하는 존재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상태를 아시고, 인간의 고통을 보시며, 끊임없이 구원하려 하시는 분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셨다’는 표현은 주님의 사랑의 본성을 잘 드러냅니다.

 

또한 ‘그의 사랑과 그의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셨다’는 말씀도 중요합니다. 여기에는 진노나 보복의 언어가 없습니다. 구원의 동기는 오직 사랑과 자비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통해 ‘여호와의 얼굴’이 무엇인지를 설명합니다. 그것은 인간을 향한 주님의 사랑이 드러난 모습입니다.

 

이 때문에 창3의 장면이 더욱 깊이 이해됩니다. 아담과 하와는 ‘여호와의 얼굴’을 피해 숨었습니다. 그러나 AC.222에 따르면 그 얼굴은 사랑의 얼굴이며 자비의 얼굴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자신들을 멸하려는 얼굴을 피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구원하려는 얼굴을 피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영적 상태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사람은 악을 의식하게 되면 주님을 피하고 싶어 합니다. 기도를 미루고, 말씀을 멀리하고, 영적인 것을 피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주님의 얼굴은 변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숨는다고 해서 사랑이 진노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사야 63장은 주님의 얼굴이 어떤 얼굴인지를 보여 줍니다. 그것은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얼굴이며, 사랑으로 구속하고 자비로 품어 주는 얼굴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주님의 자비 자체를 ‘그 얼굴의 사자’라고 부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AC.222에서 사63:7-9를 인용한 이유는, 창3의 ‘여호와의 얼굴’을 올바르게 이해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 얼굴은 두려움의 근원이 아니라 사랑의 근원입니다. 아담이 두려워한 것은 주님의 얼굴이 아니라, 그 얼굴의 빛 아래 드러난 자기 자신의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이 본문은 창3을 매우 따뜻하게 비추어 줍니다. 인간은 숨었지만, 그를 찾으시는 분은 ‘그의 사랑과 그의 자비로 구원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아담이 피한 얼굴은 심판자의 얼굴이 아니라, 이사야가 노래한 바로 그 ‘사랑과 자비의 얼굴’이었던 것입니다.

 

 

 

AC.222, 창3:8,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은지라’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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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22, 심화 3, ‘시4:6’

AC.222.심화 3. ‘시4:6’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시4:6) There be many that say, Who will show us any good? Jehovah, lift thou up the 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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