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00.심화

 

1. ‘49:4-5

 

4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하게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 참으로 나에 대한 판단이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 5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나니 그는 태에서부터 나를 그의 종으로 지으신 이시요 야곱을 그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는 이시니 이스라엘이 그에게로 모이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여호와 보시기에 영화롭게 되었으며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셨도다 (49:4, 5)

 

 

스베덴보리가 AC.300에서 사49:4-5를 인용한 목적은 이사야 전체를 해설하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같은 문맥 안에서 ‘여호와’와 ‘하나님’이라는 두 이름이 각각 다른 의미를 가지고 사용된다는 사실입니다. 곧 ‘여호와’는 주님의 신적 존재와 본질을, ‘하나님’은 주님의 신적 능력과 역사를 나타낸다는 AC.300의 주장을 성경으로 입증하기 위해 이 구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49:4에서는 ‘참으로 나에 대한 판단이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 말합니다. 이어지는 5절에서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나니’라고 하면서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셨도다’ 말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처럼 매우 짧은 문맥 안에서 ‘여호와’와 ‘하나님’이 나란히 사용되는 것을 주목합니다. 만일 두 이름이 완전히 같은 뜻이라면 굳이 구별하여 사용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불필요한 반복을 하지 않으며, 서로 다른 이름에는 언제나 서로 다른 내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여호와’는 판단하시고 부르시며 사명을 맡기시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은 스스로 존재하시며, 모든 것의 근원 되시는 주님의 신적 존재를 나타냅니다. 반면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셨도다’라는 말씀에서는 능력과 힘이 강조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이라는 이름은 주님의 신적 능력이 실제로 역사하는 측면을 나타냅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러한 차이를 근거로 ‘여호와’는 본질을, ‘하나님’은 능력을 의미한다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 인용은 또한 창세기 첫째 장과 둘째 장의 하나님의 이름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창1에서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계속 사용되는 것은 주님의 능력이 사람을 새롭게 창조하시는 과정을 다루기 때문이며, 창2에서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나타나는 것은 존재와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과 그분의 신적 능력이 함께 나타나는 상태를 다루기 때문입니다. 사49:4-5는 이러한 구별이 창세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 전체에 일관되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예로 인용된 것입니다.

 

AC.300에서 사49:4-5를 인용한 핵심 이유는, ‘여호와’와 ‘하나님’이라는 두 이름이 단순한 동의어나 문체상 반복이 아니라, 말씀의 내적 의미에서 각각 주님의 신적 본질과 신적 능력을 구별하여 나타낸다는 사실을 성경 자체로 입증하기 위해서입니다.

 

 

 

AC.300, 심화 2, ‘사55:7’

AC.300.심화 2. ‘사55: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사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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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00, 창3:22, 첫 번째 아르카나, ‘여호와 하나님’(Jehovah God)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창3:22) AC.300 첫 번째 아르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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