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02.심화
2. ‘요12:40’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요12:40) He hath blinded their eyes, and stopped up their heart, that they should not see with their eyes, nor understand with their heart, and convert themselves, and I should heal them (John 12:40).
가이드 1.0에 따르면, 요12:40은 단독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창3:22-24, AC.301-303, 마13:13, 마12:31-32, 히6:4-6, 히10:26-29를 하나의 교리적 흐름 안에서 읽어야 합니다. 그렇게 볼 때, AC.302에서 스베덴보리가 요12:40을 인용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일부러 믿지 못하게 하신다’는 예정론적 사상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profanation을 막기 위한 주님의 보호 섭리를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먼저 AC.301에서 스베덴보리는 창3:22의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먹어 영생할까 하노라’를 해설하면서, 주님께서 사람을 생명나무에서 막으신 이유는 생명을 주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profanation을 막기 위해서라고 설명합니다. 사람이 아직 악을 사랑하는 상태에서 천국의 가장 깊은 진리를 충분히 받아들였다가 나중에 그것을 거부하면,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이 한 사람 안에서 결합되어 돌이킬 수 없는 영적 상태에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AC.301의 중심 메시지입니다.
AC.302는 바로 이 원리를 유대교회의 역사 속에서 보여줍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유대인들에게 속 사람이나 천국의 내적 신비, 사후의 삶, 메시아의 참된 본질 등이 명확하게 계시되지 않았던 것은 단순히 그들의 완악함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내적 상태를 아셨고, 만일 그들이 이러한 진리를 인정한 뒤 다시 그것을 거부하게 되면 profanation에 빠질 것을 미리 보셨습니다. 따라서 계시를 제한하신 것은 심판이 아니라 자비였습니다.
이 문맥에서 요12:40은 결정적인 증거가 됩니다.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받지 못하게 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이 아직 감당할 수 없는 진리를 보거나 인정하지 않도록 허락하심으로써, 장차 더 큰 영적 파멸인 profanation을 막으셨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여기서 ‘눈을 멀게 하심’은 형벌이 아니라 보호이며, ‘마음을 완고하게 하심’은 버리심이 아니라 더 깊은 죄를 막으시는 섭리입니다.
이러한 해석은 곧이어 인용되는 마13:13과도 완전히 일치합니다.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는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도록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직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내적 진리를 직접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말씀을 상응과 표상 속에 감추신 것도 같은 이유이며, 유대교회의 모든 의식과 제사 역시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요12:40과 마13:13은 서로 다른 말씀이 아니라 하나의 동일한 섭리를 두 가지 방식으로 설명하는 본문입니다.
이와 동시에 요12:40은 마12:31-32의 ‘성령을 모독하는 죄’와도 긴밀히 연결됩니다. 성령은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신적 진리이며,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이미 인정한 신적 진리를 악과 결합시키는 profanation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사람으로 하여금 아직 그 진리를 충분히 인정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이 성령을 모독하는 상태에 이르지 않도록 보호하시는 일입니다. 히6:4-6과 히10:26-29 역시 모두 같은 원리를 설명합니다. 먼저 인정한 뒤 배반하는 것이 위험한 것이지, 아직 인정하지 못한 상태 자체가 가장 큰 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AC.302에서 요12:40을 인용한 이유는, 주님의 계시가 언제나 사람의 구원 가능성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에게 가능한 한 많은 진리를 한꺼번에 알려 주시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사람의 내적 상태에 맞추어 진리를 조금씩 여시며, 아직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것을 감추시기도 하십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사람이 profanation에 빠져 영원히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가이드 1.0에 따라 볼 때, 요12:40은 ‘심판의 말씀’이 아니라 ‘보호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눈을 멀게 하셨다는 표현은 사람을 버리셨다는 선언이 아니라, 창3:22에서 생명나무를 지키시고, 창3:24에서 그룹과 두루 도는 불칼을 두신 것과 동일한 자비의 섭리를 역사 속에서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AC.302는 바로 이 점을 증명하기 위해 요12:40을 인용하고 있으며, 이로써 창3:22-24, 요12:40, 마13:13, 마12:31-32, 히6:4-6, 히10:26-29는 모두 하나의 교리, 곧 ‘profanation을 막으시는 주님의 자비로운 섭리’를 증거하는 말씀으로 하나의 유기적인 체계를 이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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