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33.심화
1. 라멕에서 신앙마저 사라졌는데 어떻게 곧바로 ‘새로운 교회’가 일어날 수 있는가?
바로 앞에서 우리가 나눈 질문과 AC.333이 절묘하게 연결됩니다. 라멕에게서 ‘신앙에 속한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면, 가인에게 ‘표’를 주어 신앙을 보존하셨던 주님의 섭리가 실패한 것처럼 보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AC.333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실제적인 답을 보여 줍니다. 라멕이라는 한 교리적 계열에서 신앙이 완전히 소멸되었다고 해서 주님의 교회 전체에서 천적, 영적, 자연적인 것까지 모두 소멸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종말 가운데서도 ‘새로운 교회’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라멕 → 아다와 씰라 → 야발, 유발, 두발가인’을 단순한 시간순의 생물학적 계보로만 읽지 않는 것입니다. 앞서 창4와 창5의 관계에서도 계속 살펴보았듯이, 창세기 초기의 이름들은 서로 다른 교회와 교리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라멕이라는 악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아들들은 갑자기 좋은 사람들이 되었다’는 식으로 읽으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속뜻에서 중요한 것은 한 교리적 상태가 종말에 이른 가운데 새로운 교회적 상태가 일어나고, 그 안에서 다시 교회의 여러 요소들이 형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섭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원리를 보여 줍니다. 주님께서는 한 교회가 쇠퇴한다고 해서 그 안에서 형성된 모든 것을 함께 폐기하지 않으십니다. 어떤 것이 본래의 내적 생명을 잃었더라도 장차 새로운 교회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면 그것을 보존하고 새로운 질서 안에 배치하십니다. 조금 전에 ‘가인의 표’를 설명하면서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수는 없다’고 표현했던 것과도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문제는 신앙 자체가 아니라 체어리티에서 분리된 신앙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한 교회가 타락했다고 해서 그 안에 존재했던 모든 교리, 예배, 지식, 외적 형식까지 무가치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그 가운데 유용한 것을 취하여 다음 상태를 위해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관점에서 야발, 유발, 두발가인이 상당히 중요해집니다. 앞으로 세 사람을 하나씩 살펴보면 이들이 단순히 ‘목축의 조상’, ‘음악의 조상’, ‘금속 기술의 조상’이라는 문명사적 인물들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천적, 영적, 자연적인 것들이 어떻게 외적인 형식으로 보존되고 발전했는지를 보여 주는 표상임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래서 앞서 말씀하셨던 ‘아다와 씰라 계열도 썩 괜찮아 보인다’는 느낌이 정확히 여기서 생깁니다. 실제로 스베덴보리도 이들을 단순히 악한 것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괜찮아 보임’을 곧 태고교회의 완전한 회복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 새로운 교회 역시 홍수 이전 태고교회의 큰 역사 안에 있으며, 결국 그 시대 전체의 종말을 함께 맞게 됩니다. 앞서 정리하신 표현대로 ‘가인 계열과 셋 계열로 나란히 이어지던 태고교회는 결국 그 옛 질서 자체로서는 끝납니다.’ 그러므로 아다와 씰라의 새로운 교회는 홍수 이후의 고대교회와 동일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 아니라, 아직 태고교회 시대 안에서 일어난 하나의 새로운 교회적 형성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 점은 ‘새로운 교회’라는 말을 볼 때마다 매우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가 ‘새로운 교회’라고 할 때, 반드시 인류 전체의 새로운 대시대가 시작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전의 교회적 상태가 소멸하거나 변질된 뒤 그와 구별되는 새로운 교회가 일어났다는 뜻으로도 사용됩니다. 따라서 여기의 아다와 씰라와, 홍수 이후 ‘노아’로 표상되는 고대교회의 출현은 구별해야 합니다. 전자는 아직 태고교회의 역사 안에서 일어난 새로운 교회이고, 후자는 태고교회의 종말 이후 인간의 거듭남 방식 자체가 달라진 새로운 교회 시대입니다.
그래서 AC.333은 짧지만 창4 후반부를 여는 중요한 문입니다. 가인에서 라멕까지의 이야기가 ‘어떻게 신앙이 체어리티에서 분리되어 마침내 신앙 자체까지 소멸하는가’를 보여 주었다면, 이제 아다와 씰라, 야발과 유발과 두발가인의 이야기는 ‘그러한 종말 가운데서도 주님께서는 교회에 필요한 천적, 영적, 자연적인 것들을 어떻게 다시 일으키고 보존하시는가’를 보여 주기 시작합니다. 인간의 교리는 종말에 이를 수 있지만, 주님의 섭리는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한 상태의 끝에서 이미 다음 상태에 필요한 것을 준비하고 계시는 것, 바로 그것이 AC.333을 앞의 가인 계열 전체와 연결해서 읽을 때 보이는 중요한 아르카나라고 하겠습니다.
AC.333, 창4:19-22, ‘아다와 씰라, 야발, 유발, 두발가인’
19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And Lamech took unto him two wives; the name of the one was Adah, and the name of the other Zillah. 20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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