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45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46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눅23:44-49)
말씀에 나오는 숫자들은 단순히 그 겉 글자의 뜻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비의(秘義, arcana, secret)가 담긴, 천국의 놀라운 의사소통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인데요, 상태의 나라인 천국에서는 이 숫자들 역시 그 안에 담긴 상태들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가령, 창세기 처음 몇 장에 나오는 누가 몇백 년을 살았다 하는 표현은 그 속뜻으로는 그 이름으로 부르던 교회, 또는 교리나 신앙이 그만큼의 오랜 세월, 즉 어떤 상태들 가운데 있었다 하는 식입니다.
여기 ‘그만큼의 세월’이라 하였지만 꼭 일대일, 그러니까 구백육십구 세라 하여 꼭 969년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는 그 속뜻으로는 상태를 나타내기 때문인데, 실제로는 몇천, 몇만 년, 아니 그 이상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그래서 저는 지질학자들의 지구 나이 45억 년 전후라는 주장을 받아들이며, 전 세계에서 계속 발견되는 오파츠(Out-of-place artifacts, OOPARTS)들 또한 이런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습니다. 오파츠란 역사적, 고고학적으로 그 지층, 그 연대에서는 절대로 발견되어서는 안 되는 것들인데 발견되는 것들을 말합니다.
1, 2, 3, 4 같은 단순 숫자들조차 아주 깊은 비의들을 담고 있거든 하물며 이 단순 숫자들의 조합인 복합 숫자들은 그 담긴 의미가 얼마나 엄청난지 이 지상에서는 형용할 수도 없거니와 한들 이해할 수도 없다고 합니다.
참고로, 그러므로 예를 들어, 계시록에 나오는 많은 숫자들 역시, 그것을 그대로 실제 지상의 년 수로 이해하기보다, 상태로 이해할 때 비로소 많은 부분, 모든 것이 순적, 평안하게 풀린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오늘 본문, 주님의, 나무에 달리심과 관련된 숫자들, 삼시, 육시, 구시 역시 그래서 상태, 곧 그 속뜻으로 이해해야 하는데요, 물론, 지상의 시간으로 이해하면 아마도 오전 9시, 정오, 그리고 오후 3시인 것 같지만...
숫자 삼(3)의 의미가 다들 아시듯 ‘완전’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 배수인 육(6) 및 그 세 배수인 구(9)에 이르러는 더욱 완전, ‘완성’을 뜻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어머니로부터는 유전 악을 품은 인성(human), 자아로 탄생하신 주님이 그간의 거듭남의 시간들을 거쳐 이제 막 그 옛 자아를 벗으시고, 오로지 여호와로 말미암은 새로운 자아, 곧 신성한 인성(Divine Human)이 되시는 것을 표현, 상징한 것입니다.
즉 주님의 일대기, 특히 우리 평범한 인간들처럼 똑같은 거듭남의 과정, 곧 그 유전 악 옛 자아를 벗는 과정 중 그 몇 중요한 꼭지들을 이렇게 표현하신 것입니다.
더 많은 중요한 내용들은 꼭 아래 블로그에 가셔서 그 원고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
주님,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남은 삶, 오직 주님을 섬기며, 당부하신 쓰임새의 삶을 살다 주님 나라 가고 싶습니다. 저를 늘 붙들어 주세요... 아멘
...40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41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43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눅23:34-43)
사람이 자신을 살핀 후(after examination) 뒤따라야 할, 그러니까 사람이 자신의 죄 된 모습을 직시하고 났을 때, 그에게 부여되는 두 가지 의무가 있는데요, 하나는 간구(懇求, supplication)이고, 다른 하나는 고백(告白, confession)입니다.
간구라는 것은, ‘오, 주님, 제게 자비를 베푸셔서, 제가 그동안 뉘우쳐 온 악들을 이제는 저항할 수 있도록 힘주시오며, 그리고 저에게, 선을 행하고자 하는 성향과 애정을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구하는 것이며,
고백이라는 것은, ‘오, 주님, 제가 다음과 같은 저의 악들을 보고(see), 인식(recognize), 그리고 시인(acknowledge)합니다. 그리고 저 스스로가 정말 비참한 죄인임을 발견(find)하였습니다.’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15:5)
죄라는 것들은, 폐지되는(abolish) 게 아니라 제거되는(remove) 것입니다. 죄라는 것들은, 사람이 지속적으로 이것들을 삼가며(refrain from), 지속적으로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만큼만 제거됩니다.
모든 악이란 악은, 그 안이 온갖 탐욕들로 되어 있는 것이어서 절대로 즉각적으로 옮겨지는(put away) 게 아니고, 오직 점진적으로만, 즉 사람이 자신을 개혁과 거듭남 가운데 있게(to be reformed and regenerated.) 하는 만큼만 옮겨집니다.
21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마18:21-22)
1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2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 5또 이르시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눅6:1-5)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출20:10)
십계명, 즉 십성언(十聖言)에 따라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가 구전 율법으로 아주 상세하게 규정되어 왔는데요...
먼저, ‘안식일’(the Sabbath)의 속뜻은, 가장 높은 뜻(the supreme sense)으로는, 신성 그 자체(the Divine Itself)와 주님의 신적 인성(the Divine Human of the Lord) 간 하나 됨(the union)을, 내적 의미(the internal sense)로는, 신적 인성과 천국들, 즉 천국 간 결합(the conjunction)을, 그래서 그곳 선과 진리 간 결혼(the marriage of good and truth)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말씀은 쉼과 평화, 천국 상태에 있으라는 말씀이며, 이는 곧 모든 염려, 불안, 근심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 그러므로 복된 상태에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이는 곧 자아로 말미암은 일체의 것들은 금하고, 대신 오직 주님 뜻에 부합, 합당한 것들을 하라는 말씀이지요. 사람이 이 상태에 있을 때가 바로 참 ‘안식일’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속뜻을 몰랐던 유대인들은 그 수많은 ‘하지 말라’는 규례, 규정들을 지키느라 진정 안식일에도 도무지 쉴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이지 싶습니다.
천국은 시공간의 나라가 아닌, 상태와 그 변화의 나라입니다. 즉 지상의 춘하추동, 그리고 아침, 낮, 오후와 저녁 등 일상의 변화가 있는 것처럼 천국에도 열과 빛의 변화, 즉 주님의 선인 열과, 진리인 빛은 늘 영원불변하시지만, 각 구성원의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의 변화, 즉 주님의 선과 진리에 대한 각 구성원의 변화에 따라 저들 각 개인이 느끼는 상태의 변화가 있습니다.
사람은 영과 육으로 되어 있어, 영으로는 천국과 지옥, 육으로는 지상과 연결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여기 ‘천국과 지옥’이라 함은 천국과 지옥에서 각각 파견된 천사들과 악한 영들이 모든 사람에게 와 있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것은, 우리가 외적인 것, 곧 세상을 생각하고, 감각적인 것에서 기쁨을 찾고자 할 때, 그것이 천국에선 어두움이요, 추위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아와 세상에서 돌이켜 오직 주님 향해 시선 고정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부디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신 주님 말씀 꼭 기억하고, 주일뿐 아니라 평일에도 늘 ‘안식일’ 상태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