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a man [vir])의 속뜻, 신앙(faith)

 

23절,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And Lamech said unto his wives, Adah and Zillah, Hear my voice, ye wives of Lamech, and with your ears perceive my speech, for I have slain a man to my wounding, and a little one to my hurt.

 

429

사람’이 신앙을 의미한다는 것은 본 장 1절, 하와가 가인을 낳고 한 말,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I have gotten a man, Jehovah, 내가 여호와라는 사람을 얻었다)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여기서 사람은 ‘여호와라는 사람(a man, Jehovah)이라는 신앙의 교리를 의미합니다 (cf. 340). 이런 사실은 또 훨씬 앞서 다룬 (cf. 158, 265), 사람(남자) 또는 남성에 관한 내용을 봐도 분명합니다. 거기서 남자는 이해를 의미하는데, 이해는 신앙에 속한 것입니다. 그는 체어리티 또한 소멸시켰는데요, 여기 뒤이어 나오는 어린이’, 혹은 소년이라고 하는 게 바로 체어리티입니다. 신앙을 부인하고 죽이는 자는 동시에 체어리티 또한 그렇게 하는데, 그것은 체어리티가 신앙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That by a “man” [vir] is signified faith is evident from the first verse of this chapter, in that Eve said, when she bare Cain, “I have gotten a man, Jehovah”; by whom was meant the doctrine of faith, called “a man, Jehovah.” It is evident also from what was shown above concerning a man or male, that he signifies understanding, which is of faith. That he had also extinguished charity, here called a “little one,” or a “little child,” follows, for he who denies and murders faith, at the same time also denies and murders the charity that is born from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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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의 속뜻, 심지어 그렇게 분리되었을지라도 신앙에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신성모독이 될 것이다!

 

15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And Jehovah said unto him, Therefore whosoever slayeth Cain, vengeance shall be taken on him sevenfold. And Jehovah set a mark upon Cain, lest any finding him should smite him.

 

395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는 말씀의 의미가 심지어 그렇게 분리되었을지라도 신앙에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신성모독이 될 것이다 라는 것이 분명한 것은 ‘가인’이 체어리티로부터 분리된 신앙이라는 의미인 것과, ‘’(7, seven, 일곱)이 신성하다(sacred) 라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숫자 은 잘 알려진 대로 아주 거룩하게 여겨졌습니다. 육일간의 창조에 이은 일곱 번째 날, 그 자체가 곧 천인(天人, the celestial man)이요, 그 안에 평화와 쉼, 그리고 안식이 있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숫자는 유대 교회의 예전에서 아주 자주 나오며, 이 숫자가 나오는 곳마다 신성함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그 기간이 아주 길든지 짧든지 둘 다 ’(7, seven)로 구별하였으며, 아래 다니엘 본문처럼 메시아의 오심을 가리키는 아주 장구한 시간 간격을 가리켜 이레’(weeks, 일곱 날, 일곱째 날)라 하였습니다. (9:24-25) 라반과 야곱은 칠 년이라는 기간을 칠 일이라 하였습니다. (29:27-28) 같은 이유로 어디서든 이 ’(7)이라는 숫자는 거룩 혹은 신성불가침(inviolable)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시편을 보면  That the words “whosoever slayeth Cain, vengeance shall be taken on him sevenfold” signify that to do violence to faith even when thus separated would be sacrilege,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Cain,” which is faith separated from charity, and from the signification of “seven,” which is what is sacred. The number “seven” was esteemed holy, as is well known, by reason of the six days of creation, and of the seventh, which is the celestial man, in whom is peace, rest, and the sabbath. Hence this number occurs so frequently in the rites of the Jewish church, and is everywhere held sacred, and hence also both greater and less periods of time were distinguished into sevens, and were called “weeks,” such as the great intervals of time to the coming of the messiah; (Dan. 9:24–25) and the time of seven years called a “week” by Laban and Jacob. (Gen. 29:27–28) For the same reason, wherever it occurs, the number seven is accounted holy or inviolable. Thus we read in David: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시119:164) Seven times a day do I praise thee. (Ps. 119:164)

 

이사야에서 In Isaiah: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사30:26) The light of the moon shall be as the light of the sun, and the light of the sun shall be sevenfold, as the light of seven days, (Isa. 30:26)

 

여기 ‘’는 사랑을, ‘’은 사랑으로 말미암은 신앙을 가리키는데, 사랑처럼 될 신앙입니다. 사람의 거듭남의 기간이 일곱 번째 날, 곧 천인이 되기 전, 숫자 ’(6, six)으로 구별되듯, 그가 황폐해지는 기간, 곧 천적인 것이 전혀 남지 않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 또한 그렇습니다. 유대인들의 여러 번 포로 생활과, 마지막 혹은 바벨론 유수(幽囚, captivity), 곧 십 년씩 일곱 번, 혹은 칠십 년간 지속된 기간은 이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또한 땅은 안식년을 가져야 한다 여러 번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에 나오는 느부갓네살 역시 같은 내용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where the “sun” denotes love, and the “moon” faith from love, which should be as love. As the periods of man’s regeneration are distinguished into six, before the seventh arrives, that is, the celestial man, so also are the periods of his vastation, up to the time when nothing celestial remains. This was represented by the several captivities of the Jews, and by the last or Babylonish captivity, which lasted seven decades, or seventy years. It is also said several times that the earth should rest on its sabbaths. The same is represented by Nebuchadnezzar, in Daniel:

 

16또 그 마음은 변하여 사람의 마음 같지 아니하고 짐승의 마음을 받아 일곱 때를 지내리라, 23왕이 보신즉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이르기를 그 나무를 베어 없애라 그러나 그 뿌리의 그루터기는 땅에 남겨두고 쇠와 놋줄로 동이고 그것을 들풀 가운데에 두라 그것이 하늘 이슬에 젖고 또 들짐승들과 더불어 제 몫을 얻으며 일곱 때를 지내리라 하였나이다, 32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라 (단4:16, 23, 32) His heart shall be changed from man, and a beast’s heart shall be given unto him, and seven times shall pass over him. (Dan. 4:16, 23, 32)

 

그리고 계시록, 마지막 때의 황폐함에 관하여 And in John, concerning the vastation of the last times:

 

1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6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 띠를 띠고 7네 생물 중의 하나가 영원토록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들에게 주니 8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차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계15:1, 6-8) I saw another sign in heaven, great and marvelous, seven angels, having the seven last plagues; (Rev. 15:1, 6–8)

 

그리고 계속해서 and that: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계11:2) The gentiles should tread the holy city under foot forty and two months, or six times seven. (Rev. 11:2)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계5:1) I saw a book written within and on the back, sealed with seven seals. (Rev. 5:1)

 

같은 이유로 징벌의 가혹함과 더함을 모세의 책에서처럼 숫자 ‘’(7)로 표현했습니다. For the same reason the severities and augmentations of punishment were expressed by the number seven; as in Moses:

 

18또 만일 너희가 그렇게까지 되어도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면 너희의 죄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일곱 배나 더 징벌하리라, 21너희가 나를 거슬러 내게 청종하지 아니할진대 내가 너희의 죄대로 너희에게 일곱 배나 더 재앙을 내릴 것이라, 24나 곧 나도 너희에게 대항하여 너희 죄로 말미암아 너희를 칠 배나 더 치리라, 28내가 진노로 너희에게 대항하되 너희의 죄로 말미암아 칠 배나 더 징벌하리니 (레26:18, 21, 24, 28) If ye will not yet for all this obey me, then I will chastise you sevenfold for your sins. (Lev. 26:18, 21, 24, 28)

 

그리고 시편에서 And in David:

 

주여 우리 이웃이 주를 비방한 그 비방을 그들의 품에 칠 배나 갚으소서 (시79:12) Render unto our neighbors sevenfold into their bosom. (Ps. 79:12)

 

자, 정리하자면, 신앙을 범하는 것, 신앙에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일종의 신성모독(sacrilege)이었기 때문에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십니다. 그동안 말씀드린 것처럼 신앙은 예배에 속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Now as it was a sacrilege to do violence to faith—since as has been said it was to be of service—it is said that “whosoever should slay Cain, vengeance should be taken on him sevenfold.”

 

 

24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25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며 (단9:24-25)

 

27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 28야곱이 그대로 하여 그 칠 일을 채우매 라반이 딸 라헬도 그에게 아내로 주고 (창29: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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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의 속뜻, 사랑의 신앙의 모든 선으로부터 분리됨

 

14절,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Behold, thou hast cast me out this day from the faces of the ground; and from thy faces shall I be hid, and I shall be a fugitive and a wanderer in the earth;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everyone that findeth me shall slay me.

 

387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가 사랑의 신앙의 모든 선으로부터 분리됨이라는 것은 ‘주의 낯’의 상징을 보면 분명합니다. 주의 낯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자비입니다. 이 자비에서 사랑의 신앙의 모든 선이 나오는데요, 그래서 여기 그의 으로 신앙의 선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That to be “hid from thy faces” signifies to be separated from all the good of the faith of love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the “faces of Jehovah.” The “face of Jehovah,” as before said, is mercy, from which proceed all the goods of the faith of love, and therefore the goods of faith are here signified by his “faces.”

 

※ 신앙에도 두 종류가 있음을 이젠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가인의 신앙처럼 사랑과 분리되는 신앙이고, 다른 하나는 아벨의 신앙처럼 사랑과 결합하는 신앙입니다. 여기 ‘사랑의 신앙의 모든 선’은 아벨의 신앙처럼 사랑과 결합된 신앙을 말하며, 그런 신앙으로 행하는 모든 선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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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의 속뜻

 

9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And Jehovah said to Cain, Where is Abel thy brother? And he said, I know not, am I my brother’s keeper?

 

370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는 그들에게 체어리티, 혹은 ‘아우 아벨’에 관하여 일종의 딕테이트(dictate)를 준 어떤 퍼셉션 같은 것(perceptivity)을 말합니다. 가인의 대답,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는 신앙이 체어리티를 뭣도 아닌 걸로 여겼음을, 그리고 체어리티가 원하는 대로 하는 걸 마음에 내켜 하지 않았고 그 결과, 체어리티와 관련된 모든 걸 거부했다는 말입니다. 그런 게 그들의 교리가 되었습니다. Jehovah said unto Cain” signifies a certain perceptivity from within that gave them a dictate concerning charity or the “brother Abel.” Cain’s reply, “I know not, am I my brother’s keeper?” signifies that faith considered charity as nothing, and was unwilling to be subservient to it, consequently that faith altogether rejected everything of charity. Such did their doctrine be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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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369, 창4: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AC.366-369) -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의 속뜻

 

8절,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And Cain talked to Abel his brother; and it came to pass when they were in the field, that Cain rose up against Abel his brother, and slew him.

 

369

그래서 이상으로부터 이어지는 내용은 본문,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의 의미인데요, 그것은 신앙과 체어리티는 둘 다 교리적으로는 신앙의 교리로부터 말미암았음에도 불구, 신앙, 얘가 문젠데... 곧 애써 자기를 사랑에서 분리 및 체어리티를 무시, 반드시 체어리티를 지배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래서 결국은 체어리티의 불을 꺼트리고야 마는 게 신앙이라는 내용인데요, 오늘날의 경우, 체어리티의 실천은 없이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바로 이런 걸로 그들은 체어리티의 불을 꺼트리기 때문인데요, 아무리 그들이 사랑 없이 신앙 만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고, 입술로 고백할지라도 말입니다. From this then it follows that the words “Cain rose up against his brother Abel, and slew him, when they were in the field together,” denote that while both faith and charity were from the doctrine of faith, yet faith separate from love could not but disregard and thereby extinguish charity; as is the case at the present day with those who maintain that faith alone saves, without a work of charity, for in this very supposition they extinguish charity, although they know and confess with their lips that faith is not saving unless there is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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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362, 창4:7,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AC.361-365) - 가인의 속뜻, 사랑에서 신앙을 분리한 사람들

 

7절,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If thou doest well, art thou not exalted? And if thou doest not well, sin lieth at the door; and to thee is his desire, and thou rulest over him.

 

362

가인’이라 하는 신앙의 교리를 여기서 설명하고 있는데요, 사랑에서 신앙을 분리하면 그 결과, 체어리티에서도 분리됩니다. 체어리티는 사랑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어디든지 교회가 있는 곳이면 이단들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신앙의 어떤 특별한 신조에 과도한 관심을 기울이다가 그만 그걸 메인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런 게 바로 인간 사고의 본성, 즉 사람은 어떤 것 하나에 과도한 관심을 보이다가 그걸 다른 모든 것보다 우선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며, 이런 경향은 특히 그가 오버한 나머지 그걸 자신의 고유한 발견이라고 주장할 때라든지, 그가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으로 부풀어 올랐을 때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때부터는 모든 것이 다 그것에 들어맞는 것 같고, 그것을 컨펌하는 것 같아서 그는 결국 그것이 맞다 맹세까지 하게 됩니다. 심지어 그것이 거짓이더라도 말이지요. 바로 이런 식으로 가인이라 하는 사람들은 신앙을 사랑보다도 더 본질적인 걸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결과적으로 사랑 없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런 삶에서 비롯된 자아와 환상 둘 다에 대한 사랑으로 그들은 어이없게도 그런 컨펌 가운데 있게 된 것입니다. The doctrine of faith called “Cain” is here described, which in consequence of separating faith from love, separated it also from charity, the offspring of love. Wherever there is any church, there arise heresies, because while men are intent on some particular article of faith they make that the main thing; for such is the nature of man’s thought that while intent on some one thing he sets it before any other, especially when his imagination claims it as a discovery of his own, and when the love of self and of the world puff him up. Everything then seems to agree with and confirm it, until at last he will swear that it is so, even if it is false. Just in this way those called “Cain” made faith more essential than love, and as they consequently lived without love, both the love of self and the fantasy thence derived conspired to confirm them in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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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348, 창4: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AC.346-349) - 땅의 소산의 속뜻, 체어리티 없는 신앙 행위들

 

3절,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And at the end of days it came to pass that Cain brought of the fruit of the ground an offering to Jehovah.

 

348

땅의 소산’이 체어리티 없는 신앙 행위들을 의미한다는 건 또한 다음과 같이 이어지는 내용으로도 알 수 있는데요, 체어리티 없는 신앙 행위들은 절대 신앙 행위라고 할 수 없는, 그 자체로 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건 그저 겉 사람에게 속한 행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에 관해 예레미야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That by the “fruit of the ground” are meant the works of faith without charity, appears also from what follows; for the works of faith devoid of charity are works of no faith, being in themselves dead, for they are solely of the external man. Of such it is written in Jeremiah:

 

1여호와여 내가 주와 변론할 때에는 주께서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 2주께서 그들을 심으시므로 그들이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었거늘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들의 마음은 머니이다 4언제까지 이 땅이 슬퍼하며 온 지방의 채소가 마르리이까 짐승과 새들도 멸절하게 되었사오니 이는 이 땅 주민이 악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그가 우리의 나중 일을 보지 못하리라 함이니이다 (렘12:1-2, 4) Wherefore doth the way of the wicked prosper? Thou hast planted them, they also have taken root; they have gone on, they also bear fruit; thou art near in their mouth, and far from their reins; how long shall the land mourn, and the herb of every field wither? (Jer. 12:1–2, 4)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들의 마음은 머니이다’는 체어리티와 분리된 신앙의 사람들, ‘이 땅이 슬퍼하며’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에 관한 걸 가리킵니다. 같은 예언서에서 이런 행위들을 행실대로라 하고 있습니다. Near in the mouth, but far from the reins” denotes those who are of faith separated from charity, concerning whom it is said that “the land mourns.” In the same prophet such works are called the “fruit of works”:

 

9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10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렘17:9-10) The heart is deceitful [supplantativum] above all things, and it is desperate, who can know it? I Jehovah search the heart, I try the reins, even to give to every man according to his ways, and according to the fruit of his works. (Jer. 17:9–10)

 

미가에서 In Micah:

 

그 땅은 그 주민의 행위의 열매로 말미암아 황폐하리로다 (미7:13) The land shall be desolate because of them that dwell therein, for the fruit of their works. (Micah 7:13)

 

이런 ‘열매’는 아무 열매도 아니며, 이런 ‘행위’는 죽은 행위라는 사실, 그리고 열매와 뿌리 둘 다 진멸된다는 선언이 아모스서에 나옵니다. That such “fruit” is no fruit, or that the “work” is dead, and that both fruit and root perish, is thus declared in Amos:

 

내가 아모리 사람을 그들 앞에서 멸하였나니 그 키는 백향목 높이와 같고 강하기는 상수리나무 같으나 내가 그 위의 열매와 그 아래의 뿌리를 진멸하였느니라 (암2:9) I destroyed the Amorite before them, whose height was like the height of the cedars, and he was strong as the oaks; yet I destroyed his fruit from above, and his roots from beneath. (Amos 2:9)

 

그리고 시편에서 And in David:

 

왕이 그들의 후손을 땅에서 멸함이여 그들의 자손을 사람 중에서 끊으리로다 (시21:10) Their fruit shalt thou destroy from the earth, and their seed from the sons of man. (Ps. 21:10)

 

그러나 체어리티의 행위들은 살아 있으며, 이런 행위들은 이사야에 보면 선포하기를, 그들은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으리니’라 하고 있습니다. But the works of charity are living, and of them it is declared that they “take root downward, and bear fruit upward;” as in Isaiah:

 

유다 족속 중에 피하여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으리니 (사37:31) The remnant that is escaped of the house of Judah shall again take root downward, and bear fruit upward. (Isa. 37:31)

 

위로 열매를 맺으리니’는 체어리티로 행하는 것입니다. 같은 예언서에서, 그런 열매를 일컬어 영화로운 소산이라 하고 있습니다. To “bear fruit upward” is to act from charity. Such fruit is called the “fruit of excellence,” in the same prophet: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사4:2) In that day shall the shoot of Jehovah be beautiful and glorious, and the fruit of the earth excellent and comely for them that are escaped of Israel. (Isa. 4:2)

 

이는 또한 ‘구원의 열매’로, 같은 예언서에서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It is also the “fruit of salvation,” and is so called by the same prophet:

 

하늘이여 위로부터 공의를 뿌리며 구름이여 의를 부을지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싹트게 하고 공의도 함께 움돋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 (사45:8) Drop down, ye heavens, from above, and let the skies pour down righteousness; let the earth open, and let them bring forth the fruit of salvation, and let righteousness spring up together; I Jehovah will create it. (Isa. 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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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344, 창4: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AC.341-345) - 신앙이 가르치는 가장 핵심은 바로 체어리티

 

2절,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And she added to bear his brother Abel; and Abel was a shepherd of the flock, and Cain was a tiller of the ground.

 

344

신앙, 즉, 기억-지식 [스키엔티아 scientia], 지식 [코그니시오 cognitio], 그리고 신앙의 교리를 쓸모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신앙이 가르치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 말고 있을까요? 신앙이 가르치는 가장 핵심은 바로 체어리티입니다. (막12:28-35; 마22:34-39) What avails faith, that is, the memory-knowledge [scientia], the knowledge [cognitio], and the doctrine of faith, but that the man may become such as faith teaches? And the primary thing that it teaches is charity. (Mark 12:28-35; Matt. 22:34-39)

 

※ ‘기억-지식(the memory-knowledge, scientia)은 학습한 지식, 책을 통해 습득한 지식인 반면, ‘지식(the knowledge, cognitio)은 경험으로 알게 된 지식, 경험을 통과한 스키엔티아라 할 수 있습니다.

 

28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29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32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33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34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35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새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막12:28-35)

 

34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35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22:34-39)

 

이것이 신앙이 지향하는 모든 것의 최종목표이며, 만일 이게 안 되면, 모든 지식이나 교리는 한낱 빈껍데기에 다름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This is the end of all it has in view, and if this be not attained, what is all knowledge or doctrine but a mere empty no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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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340, 창4:1,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AC.338-340) -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의 속뜻

 

1절,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And the man knew Eve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are Cain, and said, I have gotten a man [vir], Jehovah.

 

340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라는 말씀의 뜻이 ‘가인’이라는 사람들로 인해 신앙이 어떤 독립된 걸로 인식되고 인정되었다라는 것은 본 장을 처음 시작할 때 드린 말씀을 보면 분명합니다. 전에 그들은 신앙이 무엇인지에 관해 마치 무지한 듯 보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신앙의 모든 것에 관한 퍼셉션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들이 신앙의 교리를 구분하기 시작하면서 전에 퍼셉션으로 알던 것들을 가져다가 교리화하였고, 그러면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한 것입니다. 마치 자기들이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지요. 이렇게 해서 전에는 심비(心碑)에 새겨지던 것들이 이제는 배워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되었습니다. 고대에 그들은 모든 새로운 것에 어떤 이름을 주었고, 이런 식, 즉 이름으로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으로 여호와께서 그녀의 고통을 들으셨다’(16:11), That the words “I have gotten a man, Jehovah” signify that with such as are called “Cain” faith is recognized and acknowledged as a thing by itself, is evident from what was said at the beginning of this chapter. Previously, they had been as it were ignorant of what faith is, because they had a perception of all the things of faith. But when they began to make a distinct doctrine of faith, they took the things they had a perception of and reduced them into doctrine, calling it “I have gotten a man, Jehovah,” as if they had found out something new; and thus what was before inscribed on the heart became a mere matter of knowing. In ancient times they gave every new thing a name, and in this way set forth the things involved in the names. Thus the signification of the name Ishmael is explained by the saying, “Jehovah hath heard her affliction;” (Gen. 16:11)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창16:11)

 

르우벤이라는 이름으로는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다’(창29:32)를, that of Reuben, by the expression, “Jehovah hath looked upon my affliction;” (Gen. 29:32)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창29:32)

 

시므온으로는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다’(창29:33)를, the name Simeon, by the saying, “Jehovah hath heard that I was less dear;” (Gen. 29:33)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창29:33)

 

유다는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창29:35)를, and that of Judah by, “This time will I praise Jehovah;” (Gen. 29:35)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창29:35)

 

그리고 모세가 세운 제단으로는 ‘여호와 닛시’(출17:15), 곧 ‘여호와는 나의 깃발’을 상징하는 식이었습니다. and an altar built by Moses was called, “Jehovah my banner.” (Exod. 17:15)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출17:15)

 

같은 방식으로, 여기 신앙의 교리 또한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또는 ‘가인’이라 이름한 것입니다. In like manner the doctrine of faith is here denominated “I have gotten a man, Jehovah,” or “C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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