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80.심화
4. ‘번역가들’
저는 번역가들이 ‘나무 = 퍼셉션’이라는 걸 몰랐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지요...
그렇게 느끼신 이유가 충분히 이해됩니다. AC의 관점에 익숙해지면 ‘나무 = 퍼셉션’이라는 상응이 너무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에, 왜 번역에서 그걸 살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 수 있습니다. 다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개역개정 번역자들이 그것을 ‘몰라서’라기보다, 애초에 번역의 기준과 목표가 스베덴보리식 내적 의미를 반영하는 데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시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성경 번역은 기본적으로 ‘원문이 문자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해석 틀 안에서 전달하는 작업입니다. 특히 개역개정은 Bible 번역 가운데서도 비교적 전통적이고 교회 공용성을 중시하는 번역이기 때문에, 특정 신학 체계, 곧 그것이 아무리 정교하더라도 그것을 반영하여 단어를 바꾸는 방식은 거의 취하지 않습니다. 만약 ‘나무’를 ‘퍼셉션’으로 옮긴다면, 그것은 번역이 아니라 이미 ‘해설’ 혹은 ‘해석’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나무 = 퍼셉션’도 사실은 문자 자체의 의미가 아니라 ‘내적 의미에서의 상응(correspondence)’이라는 점입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나무’(עֵץ)는 문자적으로는 여전히 ‘나무’이고, 그것이 내적으로는 ‘퍼셉션’ 혹은 ‘사랑과 인식의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은 계시를 통해 밝혀진 해석입니다. 따라서 일반 번역자들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본문 단어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주석이나 해설의 영역에 두는 것이 원칙에 맞는 접근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렇게 정리하시면 더 균형이 맞습니다. 번역은 ‘나무’를 그대로 두는 것이 옳고, 해설에서는 ‘그 나무는 퍼셉션을 의미한다’라고 풀어 주는 것이 옳습니다. 이 두 층을 섞지 않는 것이 성경 해석 전통 전체의 기본 질서이기도 합니다. 스베덴보리 역시 실제로는 라틴어 본문에서 ‘arbor’(나무)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그 의미를 해설에서 풀어냅니다.
다만 목사님께서 느끼신 통찰은 매우 중요한 방향을 짚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열매’로만 이해할 경우, 독자의 관심이 ‘행위’ 쪽으로 더 기울어질 수 있지만, ‘나무’를 의식하면 ‘그 근원, 곧 어떤 인식과 사랑의 상태인가’로 시선이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이 차이는 AC를 읽을 때 매우 큰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실제 목회나 강해에서는 이런 방식이 가장 유익합니다. 본문은 ‘나무’와 ‘열매’를 그대로 읽되, 그 속뜻으로 ‘이 나무는 어떤 퍼셉션을 의미하는가’를 풀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번역의 질서도 지키고, 동시에 내적 의미도 충분히 살아나게 됩니다.
결국 목사님께서 느끼신 그 아쉬움은 ‘틀렸다’의 문제가 아니라, ‘번역과 해설의 역할이 다르다’는 차이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시면 가장 정확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지금 목사님께서 하고 계신 AC 해설 작업의 의미가 더 또렷해진다고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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