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창3:16)
AC.262
‘여자’(woman)가 교회를 의미한다는 것은 앞에서 이미 보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전에 ‘여자’로 뜻하였던 그 proprium(own)으로 말미암아 왜곡된 교회를 의미합니다. 이는 지금 다루고 있는 대상이, 이미 타락하여 왜곡된 태고교회의 후손들이기 때문입니다. That the church is signified by the “woman” has been previously shown, but here the church perverted by the own which was itself formerly signified by the “woman,” because the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had become perverted, is now treated of.
해설
이 글에서 스베덴보리는 ‘여자’라는 동일한 상징이 문맥에 따라 서로 다른 상태의 교회를 나타낼 수 있음을 설명합니다. 그는 앞에서 이미 ‘여자’는 교회를 의미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상징은 언제나 고정된 하나의 의미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문맥에 따라 그 상태가 달라집니다. 따라서 여기의 ‘여자’는 교회 일반이 아니라, 자기 고유 proprium이 들어와 본래의 순수함을 잃기 시작한 교회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특별히 중요한 표현은 ‘왜곡된 교회’(the church perverted)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교회가 하루아침에 완전히 악한 교회가 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곡되었다’(perverted)는 것은 본래의 질서가 점차 비틀어지고 방향이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즉, 주님을 중심으로 살던 교회가 점차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같은 진리를 가지고도 그것을 바라보는 중심이 달라진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 원인이 바로 ‘proprium’(own)입니다. 본래 사람은 자신에게서 선과 진리가 나오는 것처럼 느끼지만, 태고교회 사람들은 그것이 실제로는 주님으로부터 흘러 들어오는 것임을 퍼셉션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proprium을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사람은 점차 자신이 선하고, 자신이 지혜롭고, 자신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자기중심성이 모든 영적 왜곡의 출발점이라고 설명합니다.
또한 이 글은 창3의 시점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분명히 ‘지금 다루고 있는 대상은 이미 타락하여 왜곡된 태고교회의 후손들’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창3은 태고교회가 완전히 끝난 이후의 고대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태고교회의 계보 안에 있는 사람들이지만, 이미 그들의 내적 상태는 본래의 순수함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었습니다. 이것은 AC.261에서 보았던 내적 질서의 변화가 계속 진행되고 있음을 다시 확인해 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후손’(posterity)이라는 표현도 단순한 혈통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성경에서 후손을 흔히 같은 교회의 영적 계승자라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따라서 태고교회의 후손이란 태고교회의 전통과 계시를 이어받았지만, 그 정신과 생명을 점차 잃어버린 사람들을 뜻합니다. 외형상으로는 같은 교회에 속해 있지만, 내적으로는 이미 다른 상태에 들어간 것입니다.
이처럼 스베덴보리는 교회의 타락을 매우 점진적인 과정으로 설명합니다. 처음에는 퍼셉션이 약해지고, 이어 자기 proprium이 커지며, 그 결과 진리의 이해가 왜곡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사랑과 지혜의 질서 자체가 무너져 홍수에 이르게 됩니다. 따라서 창3은 완전한 타락의 결과를 기록한 장이라기보다, 그 타락이 시작되고 점차 심화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보여주는 장이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날의 교회에도 이 원리는 그대로 적용됩니다. 교회의 외형은 그대로 유지될 수 있습니다. 말씀도 있고, 예배도 있으며, 신앙고백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심이 주님에서 자기 자신으로 옮겨가는 순간, 교회는 외적으로는 여전히 교회이지만 내적으로는 이미 왜곡되기 시작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변화가 항상 자기 proprium을 사랑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거듭 강조합니다.
AC.262는 창3에 나오는 ‘여자’가 더 이상 창2의 순수한 태고교회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는 글입니다. 여기의 ‘여자’는 자기 proprium을 사랑함으로써 본래의 질서를 잃기 시작한 태고교회의 후손들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새로운 교회의 시작이 아니라, 여전히 태고교회의 역사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영적 쇠퇴의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며, 이후 창4와 창5, 그리고 홍수에 이르기까지 계속 이어질 교회의 점진적인 타락을 이해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다.
AC.263, 창3:16,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창3:16)AC.263그러므로 감각 파트(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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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61, 창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AC.261-26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And unto the woman he said, I will greatly 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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