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3:16)



AC.264

말씀에서 잉태(conception)아들들을 낳는 것(birth of sons)은 영적인 의미로 사용되는데, ‘잉태는 마음의 생각과 의도(thought and device of the heart), ‘아들들은 진리들을 의미한다는 것은 호세아서에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That the “conception and birth of sons,” in the Word, are taken in a spiritual sense—“conception” for the thought and device of the heart, and “sons” for truths—is evident from Hosea:

 

11에브라임의 영광이 새 같이 날아가리니 해산하는 것이나 아이 배는 것이나 임신하는 것이 없으리라 12혹 그들이 자식을 기를지라도 내가 그 자식을 없이 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떠나는 때에는 그들에게 화가 미치리로다 (9:11, 12) As for Ephraim, their glory shall fly away like a bird, from the birth, and from the womb, and from the conception; though they shall have brought up their sons, yet will I bereave them, that they be not man; yea, woe also to them when I depart from them (Hos. 9:11–12),

 

여기서 에브라임은 지성적인 사람, 곧 진리를 이해하는 이해력을 의미하며, ‘아들들은 진리들 자체를 의미합니다. 또한 다른 곳에서는 어리석게 된 지성적인 사람, 곧 에브라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where “Ephraim” signifies the intelligent, or the understanding of truth; and “sons,” truths themselves. It is likewise said elsewhere concerning Ephraim, or one who is intelligent, who has become foolish:

 

해산하는 여인의 어려움이 그에게 임하리라 그는 지혜 없는 자식이로다 해산할 때가 되어도 그가 나오지 못하느니라 (13:13) The sorrows of one in travail have come upon him, he is an unwise son, for at the time he will not stand in the breach of the womb of sons (Hos. 13:13).

 

또한 이사야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And in Isaiah:

 

4시돈이여 너는 부끄러워할지어다 대저 바다 곧 바다의 요새가 말하기를 나는 산고를 겪지 못하였으며 출산하지 못하였으며 청년들을 양육하지도 못하였으며 처녀들을 생육하지도 못하였다 하였음이라 5그 소식이 애굽에 이르면 그들이 두로의 소식으로 말미암아 고통 받으리로다 (23:4, 5) Blush, O Zidon, for the sea hath spoken, the fortress of the sea, saying, I have not travailed, nor brought forth, nor have I brought up young men, nor caused girls to grow up; as at the report concerning Egypt, they shall bring forth according to the report of Tyre (Isa. 23:4–5),

 

여기 시돈은 신앙의 지식들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것들을 기억 지식(memory-knowledges)으로 말미암아 파괴하여 영적으로 메마르게 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where “Zidon” means those who have been in the knowledges of faith, but have destroyed them by memory-knowledges, and so have become barren.

 

[2] 다시 같은 예언서에서 거듭남에 대하여 말하는데, 여기에서도 아들들은 신앙의 진리들을 의미합니다. Again in the same prophet, treating of regeneration, and where likewise the truths of faith are signified by “sons”:

 

7시온은 진통을 하기 전에 해산하며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남아를 낳았으니 8이러한 일을 들은 자가 누구이며 이러한 일을 본 자가 누구이냐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한순간에 태어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진통하는 즉시 그 아들을 순산하였도다 9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아이를 갖도록 하였은즉 해산하게 하지 아니하겠느냐 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해산하게 하는 이인즉 어찌 태를 닫겠느냐 하시니라 (66:7-9) Before she travailed she bringeth forth; and before her pain came, she was delivered of a man child; who hath heard such a thing? Who hath seen such things? Shall the earth bring forth in one day, and shall I not cause to bring forth? saith Jehovah; shall I cause to bring forth, and close up? saith thy God (Isa. 66:7–9).

 

천적 결혼(the heavenly marriage)으로부터 잉태되고 태어나는 선과 진리이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마태복음에서 그것들을 아들들이라고 부르십니다. Goods and truths, being conceived and born of the heavenly marriage, are therefore called “sons” by the Lord in Matthew:

 

37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38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13:37, 38) He that soweth the good seed is the son of man; the field is the world and the seed are the sons of the kingdom (Matt. 13:37–38).

 

또한 주님께서는 구원하는 신앙의 선과 진리를 아브라함의 아들들이라고도 부르십니다 (8:39). 이는 앞에서 (AC.255) 말한 것처럼, ‘(seed)는 신앙을 의미하므로,에서 나온 아들들은 신앙의 선과 진리들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And the goods and truths of a saving faith he calls “sons of Abraham” (John 8:39); for “seed” (as stated n. 255) denotes faith, wherefore “sons,” which are of the “seed,” are the goods and truths of faith.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8:39)

 

이 때문에 주님께서는 친히 자체이시므로, 자신을 인자(Son of man)라고 부르셨는데, 이는 곧 교회의 신앙 자체를 의미합니다. Hence also the Lord, as being himself the “seed,” called himself the “Son of man,” that is, the faith of the church.

 

 

해설

 

이 글에서 스베덴보리는 앞에서 설명한 ‘잉태’와 ‘아들들’의 의미가 자신의 독창적인 해석이 아니라, 성경 전체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영적 언어임을 여러 본문을 통해 입증합니다. AC.261에서는 ‘잉태는 모든 생각이며, 아들들은 진리들이다’라고 정의하였고, AC.263에서는 그 잉태와 출산이 영적 전쟁 가운데 이루어진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이제 AC.264에서는 구약과 신약의 여러 구절을 인용하여 그 정의가 성경 전체의 상응 구조와 일치함을 보여줍니다.

 

먼저 스베덴보리는 ‘잉태’를 ‘마음의 생각과 의도(thought and device of the heart)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생각’은 단순한 지적 활동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마음속에서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숙고하며, 그것이 삶의 방향으로 형성되어 가는 내적 과정을 모두 포함합니다. 따라서 잉태는 영적 생명이 아직 밖으로 나타나기 전, 사람의 내면에서 조용히 이루어지는 형성의 과정입니다.

 

반면 ‘아들들’은 그 생각이 열매를 맺어 나타난 진리들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아들’은 거의 일관되게 진리를 상징하며, ‘’은 선에 대한 애정이나 교회의 애정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아들을 낳는다’는 것은 진리가 실제로 사람의 삶 속에 확립되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육체적인 출산을 비유로 하여, 영적 생명이 생각에서 삶으로 나타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호세아의 에브라임은 이러한 의미를 잘 보여줍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에브라임’은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 곧 이해력(intellectual understanding)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그 이해력이 타락하면, 아무리 ‘잉태’와 ‘출산’이 언급되어도 실제 진리는 태어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출산에서도, 태에서도, 잉태에서도 영광이 떠난다’는 말씀은 이해력이 진리를 잃어버린 상태를 뜻하며, ‘아들들을 빼앗긴다’는 것은 진리 자체를 상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사야의 ‘시돈’도 같은 원리를 보여줍니다. 시돈은 원래 신앙의 지식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기억 지식으로만 다루다가 영적 생명을 잃어버린 상태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해산하지도 않았고, 낳지도 않았다’는 것은 진리가 전혀 태어나지 못하는 영적 불임 상태를 뜻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를 통해, 단순히 많은 지식을 갖는 것과 진리를 실제로 낳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임을 가르칩니다.

 

반대로 사66은 거듭남의 신비를 보여줍니다. 주님께서 역사하실 때에는 사람이 예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진리가 태어나고, 새로운 교회가 세워집니다. ‘산고가 오기 전에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진 결과가 아니라, 주님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거듭남의 은혜를 상징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말씀을 통해 참된 영적 출산은 언제나 주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신약을 인용하여 구약의 상징이 주님 안에서 완성됨을 보여줍니다. ‘천국의 아들들’, ‘아브라함의 아들들’은 혈통을 의미하지 않고, 신앙에서 나오는 선과 진리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진리의 근원이 바로 주님 자신이십니다. 스베덴보리는 ‘’가 신앙을 의미하므로, 그 씨에서 태어난 ‘아들들’은 신앙의 선과 진리들이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영적 출생은 언제나 주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마지막 문장에서 스베덴보리는 주님께서 자신을 ‘인자(Son of Man)라고 부르신 이유까지 연결합니다. 여기서 그는 ‘인자’를 단순히 인간이 되신 분이라는 의미로만 이해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말씀 자체이시며, 교회의 모든 신앙의 근원이시므로, ‘인자’는 교회의 신앙을 대표하는 이름이 됩니다. 이는 곧 모든 참된 진리는 주님에게서 잉태되고, 주님에게서 태어나며, 주님 안에서 완성된다는 사실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AC.264는 ‘잉태’와 ‘출산’, ‘아들들’이라는 상징이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영적 언어임을 입증하는 글입니다. 잉태는 진리가 사람의 마음속에서 생각과 의도로 형성되는 과정이며, 출산은 그 진리가 삶 속에 실제로 나타나는 과정이고, 아들들은 그렇게 태어난 진리들입니다. 이러한 모든 영적 출생은 천적 결합, 결혼에서 비롯되며, 그 근원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창3:16은 육체적인 임신과 출산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 주님께서 사람 안에 진리를 형성하시고 거듭나게 하시는, 영적 생명의 신비를 계시하시는 말씀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심화

 

1. ‘9:11-12

 

 

AC.264, 심화 1, ‘호9:11-12’

AC.264.심화 1. ‘호9:11-12’ 11에브라임의 영광이 새 같이 날아가리니 해산하는 것이나 아이 배는 것이나 임신하는 것이 없으리라 12혹 그들이 자식을 기를지라도 내가 그 자식을 없이 하여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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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3:13

 

 

AC.264, 심화 2, ‘호13:13’

AC.264.심화 2. ‘호13:13’ 해산하는 여인의 어려움이 그에게 임하리라 그는 지혜 없는 자식이로다 해산할 때가 되어도 그가 나오지 못하느니라 (호13:13) The sorrows of one in travail have come upon him, he is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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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3:4-5

 

 

AC.264, 심화 3, ‘사23:4-5’

AC.264.심화 3. ‘사23:4-5’ 4시돈이여 너는 부끄러워할지어다 대저 바다 곧 바다의 요새가 말하기를 나는 산고를 겪지 못하였으며 출산하지 못하였으며 청년들을 양육하지도 못하였으며 처녀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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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66:7-9

 

 

AC.264, 심화 4, ‘사66:7-9’

AC.264.심화 4. ‘사66:7-9’ 7시온은 진통을 하기 전에 해산하며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남아를 낳았으니 8이러한 일을 들은 자가 누구이며 이러한 일을 본 자가 누구이냐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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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3:37-38

 

 

AC.264, 심화 5, ‘마13:37-38’

AC.264.심화 5. ‘마13:37-38’ 37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38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마13:37, 38) He that soweth the good seed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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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8:39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8:39)

 

 

스베덴보리가 AC.264에서 요8:39을 인용한 이유는, 말씀에서 ‘아들’이 단순한 혈통상의 자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에서 태어난 선과 진리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주님 자신의 말씀으로 확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까지 그는 ‘잉태’, ‘출산’, ‘아들’이라는 표현이 모두 영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설명해 왔으며, 이제 그 해석이 구약뿐 아니라 주님의 가르침에도 그대로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 구절에서 유대인들은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라고 대답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혈통을 이어받았다는 사실을 구원의 근거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혈통만으로는 참된 아브라함의 자녀가 될 수 없으며, 아브라함의 신앙과 삶을 이어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합니다. 말씀에서 ‘아들’은 단순히 육신으로 태어난 자녀가 아니라, 어떤 사람에게서 나오는 성품과 삶, 곧 그의 사랑과 신앙에서 태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아들’이란 단지 아브라함의 혈통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같은 신앙과 순종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것이 상응에 따른 ‘아들’의 영적 의미입니다.

 

이러한 해석은 AC.261에서 설명한 ‘아들은 진리들’이라는 가르침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영적으로는 진리가 사람 안에 태어날 때 비로소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믿음도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삶 속에서 실현된 진리가 됩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아들’이 된다는 것은 진리가 자신의 삶 속에 실제로 태어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이 구절은 스베덴보리가 강조하는 ‘영적 출생’의 원리를 잘 보여줍니다. 사람은 육체적으로는 부모에게서 태어나지만, 영적으로는 주님에게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 새로운 출생은 혈통이나 민족, 혹은 전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사람 안에 심어 주시는 진리와 선을 받아들이고 살아감으로써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혈통보다 삶을 기준으로 참된 자녀를 구별하십니다.

 

스베덴보리는 이어서 ‘(seed)는 신앙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씨가 뿌려져 자라 열매를 맺듯이, 주님께서 심으시는 신앙은 사람 안에서 진리와 선을 생겨나게 합니다. 따라서 씨에서 태어난 ‘아들들’은 신앙으로부터 나온 진리와 선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혈연적 계보가 아니라 영적 계보이며, 말씀 전체가 가르치는 거듭남의 원리입니다.

 

이 때문에 주님께서는 자신을 ‘인자(Son of Man)라고 부르십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인자는 단순히 인간이 되신 분이라는 의미를 넘어, 말씀 자체이시며, 교회의 모든 진리의 근원이신 주님을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참된 신앙과 진리는 주님에게서 씨처럼 심어지고, 사람 안에서 자라나 ‘아들’로 태어나게 됩니다.

 

AC.264에서 요8:39을 인용한 이유는, ‘아들’이 혈통이 아니라 영적 출생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주님의 말씀으로 확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참된 ‘아브라함의 아들’은 아브라함의 피를 이어받은 사람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같은 신앙과 순종 속에서 주님으로부터 진리와 선을 받아 삶으로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창3:16의 ‘아들들을 낳는다’라는 말씀 역시 육체적인 자녀의 출생이 아니라, 주님께서 사람 안에 신앙의 진리와 선을 태어나게 하시는 거듭남의 과정을 가리키는 말씀인 것입니다.

 

 

 

AC.263, 창3:16,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창3:16)AC.263그러므로 감각 파트(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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