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90.심화

 

1. ‘5:2

 

그들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 (5:2) And though they say, Jehovah lives; still they promise falsely (Jer. 5:2).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위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오직 주님만이 참으로 살아 계신 분’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앞에서 생명은 오직 하나이며, 그 생명은 주님으로부터만 나온다고 설명한 뒤, 말씀이 실제로 주님을 살아 계신 여호와’라고 부른다는 성경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살아 계신’이라는 표현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이것은 단순히 존재하고 계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생명 자체(Life Itself)이시며, 모든 천사와 사람의 생명의 근원이심을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따라서 말씀이 주님을 살아 계신 여호와’라고 부르는 것은, 모든 생명이 오직 그 분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문맥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백성은 입으로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거짓 맹세’를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살아 계신 여호와’를 입술로는 인정하면서도 삶으로는 그분을 부인하고 있었습니다. 신앙의 고백은 있었지만, 그 안에는 참된 생명이 없었습니다.

 

바로 이 점이 AC.290의 내용과 연결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생명은 단순히 주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 자체이신 주님으로부터 오는 신앙 안에 있을 때, 비로소 사람 안에 역사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입으로 아무리 여호와께서 살아 계신다 말해도, 주님과 실제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그 신앙은 살아 있는 신앙이 아닙니다.

 

이 구절은 또한 살아 있는 신앙과 죽은 신앙의 차이를 보여 줍니다. 살아 있는 신앙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가 사람의 삶 속에서 열매를 맺는 신앙입니다. 반대로 죽은 신앙은 입술의 고백은 있지만, 삶이 따르지 않는 신앙입니다. 예레미야는 바로 이러한 상태를 거짓 맹세’라는 말로 책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목적은 예레미야 시대의 죄악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말씀에서 주님을 살아 계신 여호와’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동시에, 참된 생명은 오직 주님으로부터 오며, 그 생명은 참된 신앙 안에서만 역사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5:2 AC.290의 핵심 주제를 잘 뒷받침하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입술로 주님을 고백한다고 해서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 자체이신 주님과 실제로 연결될 때, 비로소 영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말씀은 오직 주님만을 살아 계신 여호와’라고 하며, 그분 안에 있는 사람만을 참된 의미에서 산 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AC.290, 심화 2, ‘렘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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