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는 지금까지 말씀드린 대로, 고대교회(古代, the ancient church)를 상징합니다. ‘셈, 함, 야벳 노아라는 고대교회를 부모로 하는, 세 고대교회를 상징합니다.

32절,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And Noah was a son of five hundred years; and Noah begat Shem, Ham, and Japhe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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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는 지금까지 말씀드린 대로, 고대교회(古代, the ancient church)를 상징합니다. ‘셈, 함, 야벳’은 ‘노아’라는 고대교회를 부모로 하는, 세 고대교회를 상징합니다. By “Noah,” as has been said, is signified the ancient church. By “Shem, Ham, and Japheth” are signified three ancient churches, the parent of which was the ancient church called “No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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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이는 교리를 상징하는데, 어디서든 그동안 왜곡되었던 것이 이 교리로 말미암아 회복될 것이라는 내용으로, 이 또한 주님의 신적 자비로 이어지는 페이지들에 기록될 것입니다.

 

29절,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And he called his name Noah, saying, He shall comfort us from our work, and the toil of our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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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이는 교리를 상징하는데, 어디서든 그동안 왜곡되었던 것이 이 교리로 말미암아 회복될 것이라는 내용으로, 이 또한 주님의 신적 자비로 이어지는 페이지들에 기록될 것입니다. ‘(work), 이는 그들은 수고와 고통 없이는 참된 것을 지각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이는 그들은 선을 전혀 행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라멕’, 즉 황폐해진 교회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즉 자신의 것으로 참된 것을 추구해야지, 그리고 선한 것을 행해야지 할 때가 바로 ‘일과 손의 수고’의 때입니다. 이것, 곧 ‘일과 손의 수고’의 결과라고는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즉 거짓되고 악한 것뿐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저주하심’의 의미는 위 245번 글 참조) ‘위로하다’는 ‘아들’, 즉 노아와 관련되는 말인데, 이 노아는 새로운 거듭남을, 그리고 그렇게 해서 새 교회를 상징합니다. 새 교회는 고대교회(the ancient church)입니다. 이 교회, 즉 ‘노아’는 그런 이유로 마찬가지로 쉼(rest) 및 쉼에서 오는 위로를 상징합니다. 이 쉼은 앞서 태고교회에 관해 말씀드린 내용에서 주님이 쉬셨던 바로 그 일곱 번째 날의 쉼을 말합니다. (84-88번 글 참조) That by “comforting us from our work and the toil of our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is signified doctrine, whereby what had been perverted would be restored, will also appear, of the Lord’s Divine mercy, in the following pages. By “work” is signified that they could not perceive what is true except with labor and distress. By the “toil of the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is signified that they could do nothing good. Thus is described “Lamech,” that is, the vastated church. There is “work and labor of the hands” when, from themselves or from their own, men must seek out what is true and do what is good. That which comes of this is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that is, nothing comes of it but what is false and evil. (But what is signified by “Jehovah cursing,” may be seen above, n. 245.) To “comfort” has reference to the “son,” or Noah, whereby is signified a new regeneration, thus a new church, which is the ancient church. By this church, or “Noah,” is therefore likewise signified rest, and comfort that comes from rest, just as it was said of the most ancient church that it was the seventh day, in which the Lord rested. (See n. 8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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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장에 나오는 이름들은 지금까지 말씀드린 대로 교회나, 혹은 같은 말이지만, 교리를 의미합니다. 교회는 교리를 가지고 존재하거나, 또는 교리에 기반한 어떤 이름들을 갖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노아 역시 그런 식으로 고대교회를 의미하거나, 혹은 태고교회에 기반을 둔 어떤 남은 교리를 의미합니다.

 

29절,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And he called his name Noah, saying, He shall comfort us from our work, and the toil of our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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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장에 나오는 이름들은 지금까지 말씀드린 대로 교회나, 혹은 같은 말이지만, 교리를 의미합니다. 교회는 교리를 가지고 존재하거나, 또는 교리에 기반한 어떤 이름들을 갖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노아’ 역시 그런 식으로 고대교회를 의미하거나, 혹은 태고교회에 기반을 둔 어떤 남은 교리를 의미합니다. 교회나 교리들의 경우, 이미 기술한 대로 그들은 기울어집니다. 즉 신앙의 선과 진리가 더이상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로까지 기울어지는데, 그래서 그때 그런 걸 말씀에서는 교회가 황폐해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리메인스, 즉 신앙의 선과 진리를 가진 일부 사람들은 늘 남아 보존됩니다. 비록 그 수는 아주 적지만 말입니다. 신앙의 선과 진리가 이 정말 얼마 안 되는 사람들한테서라도 보존되지 않으면 천국과 인류가 결합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한 사람 개인 안에 있는 리메인스에 대하여 보면, 이것이 적을수록 그는 그가 소유한 이성과 지식에 관한 것이 덜 밝아지는데, 그 이유는 선과 진리의 빛은 리메인스로부터, 즉 주님으로부터 리메인스를 통해 흘러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만일 사람 안에 리메인스가 전혀 남아 있지 않으면 그는 사람(a man)이라 할 수 없고, 대신 짐승보다 훨씬 더 끔찍한 그 무엇이 될 수 있습니다. 리메인스가 적을수록 그는 사람이 아니며, 리메인스가 많을수록 그는 사람입니다. 리메인스는 마치 밤하늘의 별과 같습니다. 별이 적을수록 별빛은 희미하지만, 별이 많으면 별빛도 밝은 것처럼 말입니다. 태고교회로부터 겨우 살아남은 것들이 ‘노아’라는 교회를 구성하는 사람들 가운데 있었습니다만, 그러나 그 남은 것들은 퍼셉션이 아닌, 온전함(perfection)에 관한 리메인스들이며, 또 교리에 관한 리메인스들이었는데, 이 교리는 태고교회 퍼셉션에 속한 것들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제 새 교회가 주님으로 말미암아 일어났는데, 이 교회는 태고교회들하고는 태생적으로 완전히 다른 교회로서 고대교회라 하였고, 여기서 고대(ancient)라는 것은, 홍수 전 시대 끝 무렵에 존재, 홍수 후 처음 동안 있었던 데서 온 것입니다. 이 교회에 관해서는 주님의 신적 자비로 나중에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By the names in this chapter, as we have said, are signified churches, or what is the same, doctrines; for the church exists and has its name from doctrine; thus by “Noah” is signified the ancient church, or the doctrine that remained from the most ancient church. How the case is with churches or doctrines has already been stated, namely, that they decline, until there no longer remains anything of the goods and truths of faith, and then the church is said in the Word to be vastated. But still remains are always preserved, or some with whom the good and truth of faith remain, although they are few; for unless the good and truth of faith were preserved in these few, there would be no conjunction of heaven with mankind. As regards the remains that are in a man individually, the fewer they are the less can the matters of reason and knowledge that he possesses be enlightened, for the light of good and truth flows in from the remains, or through the remains, from the Lord. If there were no remains in a man he would not be a man, but much viler than a brute; and the fewer remains there are, the less is he a man, and the more remains there are, the more is he a man. Remains are like some heavenly star, which, the smaller it is the less light it gives, and the larger, the more light. The few things that remained from the most ancient church were among those who constituted the church called Noah; but these were not remains of perception, but of perfection, and also of doctrine derived from the things of perception in the most ancient churches; and therefore a new church was now raised up by the Lord, which being of an entirely different native character from the most ancient churches, is to be called the ancient church—ancient from the fact that it existed at the close of the ages before the flood, and during the first period after it. Of this church, by the Divine mercy of the Lord, more will be said hereaf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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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고대교회, 즉 홍수 후 일어나는 세 교회들의 부모 교회

 

29절,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And he called his name Noah, saying, He shall comfort us from our work, and the toil of our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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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는 고대교회, 즉 홍수 후 일어나는 세 교회들의 부모 교회를 상징한다는 내용이 뒤에 이어지는 페이지들에 나오는데요, 거기에 노아에 관한 내용이 정말 많이 나옵니다. That by “Noah” is signified the ancient church, or the parent of the three churches after the flood, will appear from the following pages, where Noah is largely treated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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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의 속뜻

 

29절,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And he called his name Noah, saying, He shall comfort us from our work, and the toil of our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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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는 고대교회(古代, the ancient church)를 의미합니다.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라는 것은 교리를 의미하는데, 이 교리에 의해 그동안 왜곡되었던 모든 것이 어디에서나 회복될 것입니다. By “Noah” is signified the ancient church. By “comforting us from our work and the toil of our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is signified doctrine, whereby what had been perverted would be resto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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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Noah), 열 번째 교회, 홍수 후 세 교회의 부모 교회, 고대교회

 

창5 개요

 

466

열 번째 교회, 홍수 후 세 교회의 부모 교회였던 이 교회의 이름은 ‘노아(Noah)입니다. 이 교회를 고대교회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됩니다. (28-29) A tenth, the parent of three churches after the flood, was named “Noah.” This church is to be called the ancient church. (verses 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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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는 곧 인류사인데, 점점 황폐해져 신앙이라는 것이 완전히 사라지는 때가 과거 몇 차례 있었음

 

19절,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And Lamech took unto him two wives; the name of the one was Adah, and the name of the other Zillah.

 

407

보통 한 교회의 상태는 그래서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교회는 참 신앙으로부터 멀어지다가 결국 신앙이라는 것이 완전히 사라지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는데, ‘황폐해졌다(vastated) 하는 것은 바로 그 지경, 그런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일이 태고교회의 경우는 가인파(가인, Cainites)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또 홍수 후 고대교회의 경우 및 유대 교회의 경우에서도 있었습니다. 주의 강림(降臨, the Lord’s advent)의 때 종말의 상태가 바로 이런 황폐한 상태였는데요, 그들은 자기들을 구원하러 오시기로 예정되어 있던 주님에 관하여 아무것도 몰랐으며, 그분을 향한 신앙에 대해서도 아는 게 거의 없었습니다. 초대 기독교회, 곧 주님 강림 직후 있었던 교회 역시 그랬으며, 오늘날( 1750년대 즈음 유럽) 교회의 경우도 그 안에 아무런 신앙이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철저하게 황폐해졌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얼마간 핵들은 늘 남아 있는데, 이것은 신앙에 관해 황폐해진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태고교회의 경우가 그랬는데, 태고교회의 남은 자들은 홍수 때까지 있었고, 홍수 후에도 계속 있었습니다. 태고교회 내 이들 남은 자들을 노아라 하는 것입니다. The state of a church in general is thus circumstanced. In process of time it departs from the true faith until at last it comes to be entirely destitute of faith, when it is said to be “vastated.” This was the case with the most ancient church among those who were called Cainites, and also with the ancient church after the flood, as well as with the Jewish church. At the time of the Lord’s advent this last was in such a state of vastation that they knew nothing about the Lord, that he was to come into the world for their salvation, and they knew still less about faith in him. Such was also the case with the primitive Christian church, or that which existed after the Lord’s advent, and which at this day is so completely vastated that there is no faith remaining in it. Yet there always remains some nucleus of a church, which those who are vastated as to faith do not acknowledge; and thus it was with the most ancient church, of which a remnant remained until the time of the flood, and continued after that event. This remnant of the church is called “No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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