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5:2)

 

AC.479

 

‘이름 부르기’(calling a name) 또는 ‘이름으로 부르기’(calling by name)는 말씀에서 사물의 성질을 안다는 걸 의미하며, 이는 앞에서 보인 바와 같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태고교회의 성질과 관련되는데, 이는 사람이 흙에서 취해졌다는 것, 곧 주님에 의해 거듭났다는 것을 뜻합니다. 왜냐하면 ‘아담’(Adam)이라는 말은 ‘땅’(ground)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가 이후에 천적 상태로 만들어졌을 때에는, 주님을 향한 사랑에서 비롯된 신앙으로 말미암아 가장 탁월한 의미에서 ‘사람’(man)이 되었습니다. By “calling a name,” or “calling by name,” is signified in the Word to know the quality of things, as was shown above, and in the present case it has relation to the qual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denoting that man was taken from the ground, or regenerated by the Lord, for the word “Adam” means “ground”; and that afterwards when he was made celestial he became most eminently “man,” by virtue of faith originating in love to the Lord.

 

 

해설

 

스베덴보리는 AC.479에서 ‘이름 부르기’라는 성경의 표현이 단순한 호칭 행위가 아니라, ‘어떤 것의 성질을 안다’는 깊은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합니다. 성경에서 이름은 라벨이 아니라 본질을 드러내는 언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어떤 존재의 이름을 부르신다는 건, 그 존재를 외적으로 지칭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그 존재가 어떤 상태이며 어떤 성질을 지니고 있는지를 밝히신다’는 뜻입니다. 이 원리를 붙들지 않으면, 성경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름 부르심’의 장면들은 단순한 서술로 흘러가 버립니다.

 

이 원리가 창세기 5장에 적용될 때, ‘하나님이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는 표현은 태고교회의 성질 전체를 규정하는 선언이 됩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이름을 부르신 대상은 한 개인이 아니라, ‘태고교회라는 하나의 교회 상태’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가 어떤 성질을 지닌 교회인지, 어떤 근원에서 형성되었는지를 ‘이름 부르기’를 통해 드러내신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성질을 설명하기 위해 ‘아담’이라는 이름의 어원을 다시 끌어옵니다. 히브리어 ‘아담(אָדָם, Adam)은 ‘(ground)을 뜻합니다. 이는 사람이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자연적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주님에 의해 거듭났다는 영적 사실’을 가리킵니다. 성경에서 ‘’은 인간의 외적 상태, 곧 자연적 인간을 뜻하며, 그 땅에서 취해졌다는 말은 인간이 자신의 자연적 상태에서 주님에 의해 새롭게 형성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아담’이라는 이름은 ‘자연적 상태에 있다가 부름을 받아 거듭난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태고교회는 처음부터 완성된 천적 상태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거듭남의 과정을 거친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먼저 ‘’에서 취해진 존재였고, 다시 말해 자연적 인간의 상태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그 출발은 곧 주님의 역사로 이어져, 점차 영적 상태를 거쳐 천적 상태로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이 전환 과정 전체가 바로 태고교회의 형성 과정이며, 그 성질을 집약한 이름이 ‘아담’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어서 태고교회가 천적 상태로 만들어졌을 때의 변화를 강조합니다. 그때 비로소 그들은 가장 탁월한 의미에서 ‘사람’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가장 탁월하다’는 말은 도덕적으로 우수하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됨의 기준에 가장 부합했다’는 뜻입니다. 앞서 보았듯이, 참된 ‘사람’은 주님을 향한 사랑에서 비롯된 신앙을 지닌 존재입니다. 태고교회의 사람들은 바로 이 신앙을 살았기에, 성경은 그들을 가장 본질적인 의미에서 ‘사람’이라 부릅니다.

 

이 신앙은 지식에서 출발한 신앙이 아니라, ‘사랑에서 흘러나온 신앙’이었습니다. 태고교회의 사람들은 먼저 주님을 사랑했고, 그 사랑 안에서 무엇이 참인지 곧바로 인식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신앙은 갈등이나 분투의 결과가 아니라, 사랑의 자연스러운 표현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스베덴보리는 ‘사랑에서 비롯된 신앙’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 신앙이야말로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AC.479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방향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종종 ‘이름’과 ‘정체성’을 외적 기준에서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름은 언제나 ‘내적 성질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부르시는가는, 우리가 어떤 성질의 삶을 살고 있는가와 직결됩니다. ‘아담’이라는 이름이 태고교회의 성질을 드러냈듯이, 오늘날 우리의 삶 역시 주님 앞에서 어떤 이름으로 불릴지를 스스로 묻게 됩니다.

 

또한 이 말씀은 거듭남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거듭남은 단순히 죄책에서 벗어나는 경험이 아니라, ‘자연적 상태에서 불러내어 주님 중심의 상태로 옮겨지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의 목적은 단순히 영적 인간이 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사랑에서 비롯된 신앙을 사는 천적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데 있습니다. 이 길 위에 설 때, 인간은 비로소 성경이 말하는 가장 깊은 의미의 ‘사람’이 됩니다.

 

결국 AC.479는 ‘이름을 부르기’라는 짧은 표현 속에, 인간의 거듭남과 교회의 본질을 함께 담아냅니다. 태고교회는 땅에서 취해졌으나, 주님에 의해 새롭게 되었고, 마침내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신앙으로 가장 탁월한 의미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질서는 과거의 한 교회에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 각자의 영적 여정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주님의 질서입니다.

 

 

 

AC.478, 창5:2, 히브리어 ‘아담’(אָדָם, Adam)은 ‘사람’이라는 뜻의 보통명사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창5:2) AC.478 그가 ‘아담’(Adam)이라 불리는 이유는 히브리어 ‘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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