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5:4)
AC.491
이 장(4, 7, 10, 13, 16, 19, 26, 30절)에서도 ‘아들들’(sons)과 ‘딸들’(daughters)은 동일한 것들을 의미하는데, 곧 교회가 어떠한가에 따라 ‘아들들과 딸들’(sons and daughters), 다시 말해 선들과 진리들도 그러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진리들과 선들은 분명히 퍼셉션으로 알게 된 것들인데, 이는 그것들이 태고교회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며, 태고교회는 모든 다른 교회들과 그 뒤를 잇는 교회들의 주된 교회요 부모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The same things are signified by “sons” and “daughters” in this chapter (verses 4, 7, 10, 13, 16, 19, 26, 30), but such as is the church, such are the “sons and daughters,” that is, such are the goods and truths; the truths and goods here spoken of are such as were distinctly perceived, because they are predicated of the most ancient church, the principal and parent of all the other and succeeding churches.
해설
이 글에서 스베덴보리는 앞선 AC.489와 AC.490에서 설명한 내용을 창세기 5장 전체에 직접 적용합니다. 즉, ‘아들들’과 ‘딸들’이 진리들과 선들을 의미한다는 원리는 부분적인 해석이 아니라, 이 장 전체를 관통하는 기본 전제임을 분명히 합니다. 창세기 5장 곳곳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자녀(子女)들’, 즉 ‘아들들과 딸들’이라는 표현은 모두 같은 의미 울타리 안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그 의미는 언제나 교회의 상태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한 문장이 있습니다. ‘교회가 어떠한가에 따라 아들들과 딸들도 그러하다’는 말입니다. 이는 진리와 선이 결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진리와 선은 항상 어떤 교회 상태 안에서 태어나고, 그 교회의 성질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교회에서는 순수한 진리와 선이 퍼셉션되지만, 다른 교회에서는 혼합된 진리와 왜곡된 선이 나타납니다. ‘아들들과 딸들’은 교회의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는 지표입니다.
특히 AC.491은 여기서 말하는 진리들과 선들이 ‘분명히 퍼셉션되었던 것들’, 즉 ‘퍼셉션으로 알게 된 것들’임을 강조합니다. 이는 태고교회의 독특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대목입니다. 태고교회의 진리와 선은 추론이나 학습의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그것들은 사랑 안에서 즉각적으로 퍼셉션된 것이었고, 그 퍼셉션은 매우 분명하고 생생했습니다. 그래서 태고교회의 ‘아들들과 딸들’은 흐릿한 개념이나 불완전한 교리가 아니라, 살아 있고 분명한 진리와 선이었습니다.
이 점에서 태고교회는 ‘모든 다른 교회들과 그 뒤를 잇는 교회들의 주된 교회요 부모 교회’라고 불립니다. 이는 연대기적 의미에서의 첫 교회라는 뜻을 넘어, ‘질적인 기준점’이라는 의미입니다. 이후의 모든 교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태고교회의 상태에서 멀어지거나 변형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후 교회들의 진리와 선은 점점 덜 퍼셉션되고, 점점 더 외적 형식과 교리의 형태를 띠게 됩니다.
그러나 이 ‘부모 교회’라는 표현에는 단절이 아니라 연속의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태고교회의 진리와 선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계승되었기 때문입니다. 셋의 교회, 그 이후의 교회들 역시 여전히 진리와 선을 가졌지만, 그것들은 더 이상 동일한 강도의 퍼셉션 안에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교회의 진리와 선은 태고교회라는 원형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습니다.
AC.491은 우리로 하여금 교회를 평가하는 기준을 다시 점검하게 합니다. 우리는 종종 교회의 건강성을 외적 활동이나 조직, 영향력으로 판단하지만, 성경은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그 교회 안에서 어떤 아들들과 딸들이 태어나고 있는가’, 다시 말해 어떤 진리와 어떤 선이 실제로 퍼셉션되고 있는가를 묻습니다. 이 질문 앞에서는 규모나 전통도 결정적이지 않습니다.
또한 이 말씀은 개인 신앙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한 사람 안에도 하나의 ‘교회 상태’가 있으며, 그 상태에 따라 그 사람 안에서 태어나는 진리와 선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퍼셉션이 살아 있을 때에는 진리와 선이 분명하고 생동감 있게 형성되지만, 퍼셉션이 약해질수록 그것들은 점점 개념적이고 형식적인 것으로 변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핵심은 얼마나 많은 지식을 쌓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퍼셉션이 살아 있는가’에 있습니다.
결국 AC.491은 창세기 5장을 하나의 거대한 생명 기록으로 보게 합니다. 그 기록은 개인들의 출생과 사망을 나열하는 문서가 아니라, 태고교회라는 부모 교회로부터 시작된 진리와 선의 퍼셉션이 어떻게 이어지고 변화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영적 계보입니다. 이 관점을 붙들 때, 우리는 이 족보를 더 이상 멀게 느끼지 않고, 오늘 우리의 교회와 신앙을 비추는 거울로 읽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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