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13.심화
2. ‘악을 생각하고 있다는 의식’
순진무구함이 없는 곳에서는 벌거벗음이 수치와 치욕이 되는데, 이는 악을 생각하고 있다는 의식이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for where there is no innocence, nakedness is a scandal and disgrace, because it is attended with a consciousness of thinking evil. (AC.213)
이 글은 매우 짧은 문장이지만, 인간의 영적 심리를 깊이 꿰뚫고 있는 설명입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창2:25의 아담과 하와는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안에는 아직 순진무구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순진무구함이란 단순히 순수하거나 착한 상태가 아니라, 자기 자신보다 주님을 앞세우고, 모든 선과 진리가 주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인정하는 상태입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숨길 것이 없습니다. 감출 악의 의도가 없고, 위장할 거짓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순진무구함이 사라지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의도를 의식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생각들 가운데 주님 앞에 그대로 드러나기를 원하지 않는 것들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악을 생각하고 있다는 의식’(a consciousness of thinking evil)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악을 행했다는 것이 아니라 ‘악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안다’는 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 자기 내면을 압니다. 겉으로는 선한 척해도 속으로는 시기하고 있음을 알고, 사랑하는 척해도 사실은 인정받고 싶어 함을 알고, 겸손한 척해도 사실은 칭찬받고 싶어 함을 압니다. 바로 이런 자기 인식이 있을 때 벌거벗음은 수치가 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의 설명은 매우 현실적입니다. 사람이 부끄러움을 느끼는 이유는 단순히 남이 보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자기 상태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상태가 주님의 질서와 다르다는 것을 어렴풋하게라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끄러움은 일종의 영적 자각이기도 합니다.
이 점에서 창3의 아담과 하와는 완전히 죽은 상태가 아닙니다. 오히려 아직 살아 있는 양심과 지각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만일 완전히 악 속에 잠겼다면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벌거벗음을 부끄러워했습니다. 이것은 자신들의 상태가 이전과 달라졌음을 알았다는 뜻이며, 따라서 아직 내적 빛이 완전히 꺼지지는 않았다는 뜻입니다.
어쩌면 목사님께서 앞서 자주 말씀하신 own과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 own 안에 있을수록 자신을 포장하려 하고, 감추려 하고, 정당화하려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상태를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own은 언제나 무언가를 덮으려 합니다. 반대로 순진무구함은 숨길 것이 없기 때문에 덮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AC.213의 이 문장은 결국 이런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순진무구함이 있는 사람은 주님 앞에서 숨을 것이 없지만, 순진무구함을 잃은 사람은 자기 안의 악을 어느 정도 알기 때문에 자신을 감추려 한다.’ 바로 그 감추고 싶은 마음이 벌거벗음을 수치로 만들고, 그 수치가 창3의 무화과 나뭇잎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부끄러움 자체는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스베덴보리의 문맥에서는, 자신이 벌거벗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아직 영적으로 살아 있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정말 위험한 상태는 벌거벗었으면서도 벌거벗은 줄 모르는 상태, 악 가운데 있으면서도 그것을 선이라고 믿는 상태일 것입니다. AC.206의 ‘눈이 열렸다고 생각하는 뱀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반면 AC.213의 사람들은 적어도 자신들이 벌거벗었다는 사실만큼은 알고 있었고, 바로 그 점에서 아직 회복의 가능성이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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