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장 4, 7, 10, 13, 16, 19, 26  30절 등에 나오는 자녀들’’(sons and daughters)의 속뜻 선과 진리이며, 이는 그 시절, 퍼셉션으로 지각되었고, 태고교회는 이 퍼셉션으로만 설명 가능한 교회였으며, 이 퍼셉션은 이후 이어지는 모든 교회의 원리요, 부모였다.

 

4절,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the days of man after he begat Seth were eight hundred years; and he begat sons and daughters.

 

491

본 장 4, 7, 10, 13, 16, 19, 26 및 30절 등에 나오는 ‘아들’과 ‘’은 같은 걸 상징합니다. 이런 것이 교회요, 이런 것이 ‘자녀들’’(sons and daughters), 즉 이런 것이 선과 진리입니다. 여기서 말씀드린 진리와 선은 뚜렷하게 지각된 것인데요, 태고교회가 바로 이것들로 설명이 되며, 다른 모든 이어지는 교회들의 원리요, 부모였기 때문입니다. The same things are signified by “sons” and “daughters” in this chapter (verses 4, 7, 10, 13, 16, 19, 26, 30), but such as is the church, such are the “sons and daughters,” that is, such are the goods and truths; the truths and goods here spoken of are such as were distinctly perceived, because they are predicated of the most ancient church, the principal and parent of all the other and succeeding churches.

Posted by bygracetistory
,

말씀에서 (daughters)은 종종 선을 가리킨다. 사랑과 신앙의 선과 아름다움을 (daughter)로 설명하며, 그래서 교회를 선으로 말미암아 (daughters)이라 한다.

 

4절,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the days of man after he begat Seth were eight hundred years; and he begat sons and daughters.

 

490

말씀에서 ‘(daughters)은 종종 선을 가리킵니다. 시편입니다. In the Word “daughters” frequently denote goods; as in David:

 

10딸이여 듣고 보고 귀를 기울일지어다 네 백성과 네 아버지의 집을 잊어버릴지어다 11그리하면 왕이 네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 그는 네 주인이시니 너는 그를 경배할지어다 12두로의 딸은 예물을 드리고 백성 중 부한 자도 네 얼굴 보기를 원하리로다 13왕의 딸은 궁중에서 모든 영화를 누리니 그의 옷은 금으로 수 놓았도다 14수 놓은 옷을 입은 그는 왕께로 인도함을 받으며 시종하는 친구 처녀들도 왕께로 이끌려 갈 것이라 15그들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도함을 받고 왕궁에 들어가리로다 16왕의 아들들은 왕의 조상들을 계승할 것이라 왕이 그들로 온 세계의 군왕을 삼으리로다 17내가 왕의 이름을 만세에 기억하게 하리니 그러므로 만민이 왕을 영원히 찬송하리로다 (시45:10-17) Kings’ daughters were among thy precious ones; at thy right hand doth stand the queen in the best gold of Ophir; the daughter of Tyre with a gift; the king’s daughter is all glorious within; of eyelet work of gold is her raiment; instead of thy fathers shall be thy sons, (Ps. 45:10-17)

 

여기서는 사랑과 신앙의 선과 아름다움을 ‘(daughter)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선으로 말미암아 ‘(daughters)이라 합니다. 이사야 37장 22절과 다른 많은 데서 ‘딸 시온’, ‘딸 예루살렘’으로 부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내 딸 백성’(사22:4), ‘딸 다시스’(사23:10), ‘딸 시돈’(사23:12) 및 ‘들에 있는 딸’(겔26:6, 8)이라고도 합니다. where the good and beauty of love and faith are described by the “daughter.” Hence churches are called “daughters” by virtue of goods, as the “daughter of Zion” and the “daughter of Jerusalem” (Isa. 37:22, and in many other places); they are also called “daughters of my people” (Isa. 22:4), the “daughter of Tarshish” (Isa. 23:10), the “daughter of Sidon” (verse 12), and “daughters in the field” (Ezek. 26:6, 8).

 

 

여호와께서 그에 대하여 이같이 이르시되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조소하였고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 (사37:22)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지어다 나는 슬피 통곡하겠노라 내 딸 백성이 패망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나를 위로하려고 힘쓰지 말지니라 (사22:4)

 

10딸 다시스여 나일 같이 너희 땅에 넘칠지어다 너를 속박함이 다시는 없으리라, 12이르시되 너 학대 받은 처녀 딸 시돈아 네게 다시는 희락이 없으리니 일어나 깃딤으로 건너가라 거기에서도 네가 평안을 얻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사23:10, 12)

 

6들에 있는 그의 딸들은 칼에 죽으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8그가 들에 있는 너의 딸들을 칼로 죽이고 너를 치려고 사다리를 세우며 토성을 쌓으며 방패를 갖출 것이며 (겔26:6, 8)

Posted by bygracetistory
,

자녀(sons and daughters), 그들이 지각했던 진리와 선(the truths and goods)을 의미

진리와 선(the truths and goods)처럼 영어로는 복수형이나 번역은 단수로 합니다. 우리말로는 좀 어색하기 때문인데요, 그러나 필요할 경우, 괄호 안에 영어 복수형을 표기합니다.

 

4절,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the days of man after he begat Seth were eight hundred years; and he begat sons and daughters.

 

489

자녀(sons and daughters)는 그들이 지각했던 진리와 선(the truths and goods)을 의미하며, 실제로 ‘아들’은 진리를, ‘’은 선을 의미하고 있음은 예언서들에 나오는 많은 구절들을 보면 분명합니다. 말씀을 보면, 고대에도 그랬지만, 교회의 잉태와 해산(the conceptions and births of the church)을 가리켜 ‘자녀’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처럼 말입니다. That by “sons and daughters” are signified the truths and goods which they had a perception of, and indeed by “sons” truths, and by “daughters” goods, is evident from many passages in the prophets; for in the Word, as also in olden time, the conceptions and births of the church are called “sons and daughters,” as in Isaiah:

 

3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4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 5그 때에 네가 보고 기쁜 빛을 내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사60:3-5) The Gentiles shall come to thy light, and kings to the brightness of thy rising; lift up thine eyes round about and see; all they gather themselves together and come to thee; thy sons shall come from far, and thy daughters shall be nursed at thy side; then thou shalt see and flow together, and thy heart shall be amazed, and shall be enlarged, (Isa. 60:3–5)

 

위 본문에서 ‘아들들’은 진리를, ‘딸들’은 선을 의미합니다. in which passage “sons” signify truths, and “daughters” goods.

 

[2] 시편입니다. In David:

 

11이방인의 손에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그들의 입은 거짓을 말하며 12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들과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양식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잇돌들과 같으며 (시144:11-12) Deliver me and rescue me from the hand of the sons of the stranger, whose mouth speaketh vanity; that our sons may be as plants grown up in their youth, that our daughters may be as cornerstones hewn in the form of a temple, (Ps. 144:11–12)

 

여기 ‘이방인(the sons of the stranger)은 거짓된 진리들, 곧 거짓들을, ‘우리 아들들’은 진리의 교리들을, ‘우리 딸들’은 선의 교리들을 말합니다. where the “sons of the stranger” signify spurious truths, or falsities; “our sons” signify doctrinals of truth; “our daughters,” doctrinals of good.

 

[3] 이사야입니다. In Isaiah:

 

6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끝에서 오게 하며, 8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 (사43:6, 8) I will say to the north, Give up, and to the south, Keep not back; bring my sons from far, and my daughters from the ends of the earth; bring forth the blind people, and they shall have eyes; the deaf, and they shall have ears, (Isa. 43:6, 8)

 

위 구절에서, ‘아들들’은 진리를, ‘딸들’은 선을, ‘보지 못하는 백성(the blind)은 진리를 볼 사람들을, ‘듣지 못하는 백성(the deaf)은 진리를 순종할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in which passage “sons” signify truths; “daughters,” goods; the “blind,” those who would see truths; and the “deaf,” those who would obey them.

 

[4] 예레미야입니다. In Jeremiah:

 

부끄러운 그것이 우리가 청년의 때로부터 우리 조상들의 산업인 양 떼와 소 떼와 아들들과 딸들을 삼켰사온즉 (렘3:24) Shame hath devoured the labor of our fathers from our youth; their flocks, their herds, their sons, and their daughters, (Jer. 3:24)

 

여기 ‘아들들’과 ‘딸들’은 진리와 선을 의미합니다. where “sons” and “daughters” signify truths and goods.

 

자손’과 ‘아들들’이 진리를 의미함은 이사야를 보면 명백합니다. That “children” and “sons” signify truths is plain from Isaiah:

 

22야곱이 이제는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겠고 그의 얼굴이 이제는 창백해지지 아니할 것이며 23그의 자손은 내 손이 그 가운데에서 행한 것을 볼 때에 내 이름을 거룩하다 하며 야곱의 거룩한 이를 거룩하다 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며 24마음이 혼미하던 자들도 총명하게 되며 (사29:22-24) Jacob shall not now be ashamed, neither shall his face now wax pale; for when he shall see his children the work of my hands in the midst of him, they shall sanctify my name, and shall sanctify the Holy One of Jacob, and shall fear the God of Israel; they also that erred in spirit shall know understanding, (Isa. 29:22–24)

 

여기 ‘야곱의 거룩한 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주님을, ‘자손(children)은 거듭난 사람들, 곧 이 본문이 설명하고 있는 대로 선과 진리를 이해하게 된 사람들을 말합니다. where the “holy one of Jacob, the God of Israel,” signifies the Lord; “children” signify the regenerate, who have the understanding of good and truth, as is indeed explained.

 

[5] 다시 Again: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사54:1) Sing, O barren, thou that didst not bear, for more are the sons of the desolate than the sons of the married wife, (Isa. 54:1)

 

여기 ‘홀로 된 여인의 자식(the sons of the desolate)은 초대교회(the primitive church), 즉 이방인들의 교회에 속한 진리를, ‘남편 있는 자의 자식(the sons of the married wife)은 유대교회에 속한 진리들을 말합니다. where the “sons of the desolate” signify the truths of the primitive church, or that of the Gentiles; the “sons of the married wife,” the truths of the Jewish church.

 

[6] 예레미야입니다. In Jeremiah:

 

내 장막이 무너지고 나의 모든 줄이 끊어졌으며 내 자녀가 나를 떠나가고 있지 아니하니 (렘10:20) My tent is laid waste and all my cords are plucked out; my sons are gone forth of me, and are not, (Jer. 10:20)

 

여기 ‘자녀(sons)는 진리를 의미합니다. 다시 where “sons” signify truths. Again:

 

그의 자손은 예전과 같겠고 그 회중은 내 앞에 굳게 설 것이며 (렘30:20) His sons shall be as aforetime, and their congregation shall be established before me, (Jer. 30:20)

 

여기 ‘자손(sons)은 고대교회의 진리들을 말합니다. 스가랴입니다. where “sons” signify the truths of the ancient church. In Zechariah:

 

시온아 내가 네 자식들을 일으켜 헬라 자식들을 치게 하며 너를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슥9:13) I will stir up thy sons, O Zion, with thy sons, O Javan, and make thee as the sword of a mighty man, (Zech. 9:13)

 

사랑의 신앙에 속한 진리들을 의미하면서 signifying the truths of the faith of love.

Posted by bygracetistory
,

시간개념이 제거될 때 남는 것은 그때 존재했던 것들에 대한 상태개념이다. 본 장에서 아주 자주 언급되는 ‘(days)과 ‘(years)에 대한 경우가 바로 이런 경우다.

 

4절,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the days of man after he begat Seth were eight hundred years; and he begat sons and daughters.

 

488

(days)은 일반적인 상태들을, ‘해, 연한(years)은 구체적인 상태들을 의미한다는 것은(AC.482, 487) 말씀, 에스겔에 보면 나옵니다. That “days” signify states in general, and “years” states in special, appears from the Word, as in Ezekiel:

 

네 날이 가까웠고 네 연한이 찼도다 (겔22:4) Thou hast caused thy days to draw near, and art come even unto thy years, (Ezek. 22:4)

 

혐오스러운 짓들을 저지르고, 자기들의 죄를 꽉꽉 채우는 사람들에 관해 말씀하시면서 그들의 상태를 일반적으로는 ‘’로, 구체적으로는 ‘연한’으로 기술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시편에 speaking of those who commit abominations, and fill up the measure of their sins, of whose state in general are predicated “days,” and in special “years.” So in David:

 

주께서 왕에게 장수하게 하사 그의 나이가 여러 대에 미치게 하시리이다 (시61:6) Thou shalt add days to the days of the king, and his years as of generation and generation, (Ps. 61:6)

 

주님과 주님의 나라에 관한 말씀 중에 나오는 ‘장수(, days)와 ‘나이(, years) 역시 그 나라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다시 speaking of the Lord and of his kingdom, where also “days” and “years” signify the state of his kingdom. Again:

 

내가 옛날 곧 지나간 세월을 생각하였사오며 (시77:5) I have considered the “days of old,” the years of the ages, (Ps. 77:5)

 

여기 ‘옛날(the days of old)은 태고교회의 상태를, ‘지나간 세월(the years of the ages)은 고대교회의 상태를 말합니다. 이사야입니다. where “days of old” signify states of the most ancient church, and “years of the ages,” states of the ancient church. In Isaiah:

 

이는 내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에 있고 내가 구속할 해가 왔으나 (사63:4) The day of vengeance is in my heart, and the year of my redeemed is come, (Isa. 63:4)

 

마지막 때에 관한 말씀인데, 여기 ‘원수 갚는 날(the day of vengeance)은 일종의 저주 상태를, ‘구속할 해(the year of the redeemed)는 일종의 축복 상태를 의미합니다. 다시 speaking of the last times, where the “day of vengeance” signifies a state of damnation, and the “year of the redeemed” a state of blessedness. Again: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사61:2) To proclaim the acceptable year of the Lord, and the day of vengeance of our God; to comfort all that mourn, (Isa. 61:2)

 

여기 ‘’과 ‘’ 둘 다 상태를 의미합니다. 예레미야 애가입니다. where both “days” and “years” signify states. In Jeremiah: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애5:21) Renew our days as of old, (Lam. 5:21)

 

여기 보면 분명히 상태를 의미합니다. where state is plainly meant.

 

[2] 요엘입니다. In Joel:

 

1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2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라 이와 같은 것이 옛날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대대에 없으리로다 (욜2:1-2) The day of Jehovah cometh, for it is nigh at hand, a day of darkness and of thick darkness, a day of cloud and of obscurity; there hath not been ever the like, neither shall be after it, even to the years of generation and generation, (Joel 2:1–2)

 

여기 ‘’(day)은 ‘어둡고 캄캄한(of darkness and of thick darkness), ‘짙은 구름이 덮인(of cloud and of obscurity) 상태를 말하는데, 구체적으로는 하나하나의 상태를, 일반적으로는 전체적인 모든 상태를 의미합니다. 스가랴입니다. where “day” signifies a state of darkness and of thick darkness, of cloud and of obscurity, with each one in particular, and with all in general. In Zechariah:

 

9내가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 10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슥3:9-10) I will remove the iniquity of that land in one day; in that day shall ye cry a man to his companion under the vine, and under the fig tree. (Zech. 3:9–10)

 

여호와께서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슥14:7) It shall be one day which is known to Jehovah, not day nor night,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at evening time it shall be light, (Zech. 14:7)

 

여기 역시 상태를 의미함이 분명한데요,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인 어떤 날이 있을 것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에 나오는 표현들 가운데에도 같은 게 나옵니다. where it is plain that state is meant, for it is said that there shall be a day that is “neither day nor night, at evening time it shall be light.” The same appears from expressions in the Decalogue: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오직 온전하고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온전하고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길리라 (신5:16; 25:15) Honor thy father and thy mother, that thy days may be prolonged, and that it may be well with thee upon the ground, (Deut. 5:16; 25:15)

 

여기 ‘네 날이 길리라(the days prolonged)는 것은 생명의 길이가 아닌, 어떤 행복한 상태를 말합니다. where to have the “days prolonged” does not signify length of life, but a happy state.

 

[3] 겉뜻, 겉 글자의 뜻으로는, ‘’은 마치 시간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일 필요가 꼭 있습니다만, 그러나 속뜻으로는, ‘’은 상태를 가리킵니다. 천사들은, 그들은 말씀의 속뜻, 내적 의미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시간이라는 게 뭔지 모릅니다. 그들에게는 시간을 구분하게 해주는 해와 달이 없기 때문인데, 그래서 그들은 날(days)이 뭔지, 해(years)가 뭔지를 모르며, 대신 상태들과 그 상태들의 변화만 압니다. 그래서 천사들, 말씀의 속뜻, 내적 의미 안에만 있는 천사들 앞에서는, 여기 에스겔에 나오는 말씀 구절의 속뜻처럼 무슨 일이나 시공간에 관련된 것들은 다 사라집니다. 에스겔 이 구절의 겉 글자의 뜻처럼 말입니다. In the literal sense it must needs appear as if “day” signifies time, but in the internal sense it signifies state. The angels, who are in the internal sense, do not know what time is, for they have no sun and moon that distinguish times; consequently they do not know what days and years are, but only what states are and the changes thereof; and therefore before the angels, who are in the internal sense, everything relating to matter, space, and time disappears, as in the literal sense of this passage in Ezekiel:

 

그 날이 가깝도다 여호와의 날이 가깝도다 구름의 날일 것이요 여러 나라들의 때이리로다 (겔30:3) The day is near, even the day of Jehovah is near, a day of cloud; it shall be the time of the nations, (Ezek. 30:3)

 

그리고 요엘서에도 나오는데요 and of this in Joel:

 

슬프다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같이 전능자에게로부터 이르리로다 (욜1:15) Alas for the day! For the day of Jehovah is at hand, and as vastation shall it come, (Joel 1:15)

 

여기 ‘구름의 날(a day of cloud)은 구름, 즉 거짓을, ‘나라들의 때(the day of the nations)는 나라들, 즉 사악함(邪惡, wickedness)을, ‘여호와의 날(the day of Jehovah)은 황폐함(荒廢, vastation)을 의미합니다. 시간개념이 제거될 때 남는 것은 그때 존재했던 것들에 대한 상태개념입니다. 본 장에서 아주 자주 언급되는 ‘(days)과 ‘(years)에 대한 경우가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where a “day of cloud” signifies a cloud, or falsity; the “day of the nations” signifies the nations, or wickedness; the “day of Jehovah” signifies vastation. When the notion of time is removed, there remains the notion of the state of the things which existed at that time. The case is the same with regard to the “days” and “years” that are so often mentioned in this chapter.

Posted by bygracetistory
,

 팔백 년’, 구백삼십 세의 속뜻, 숫자들은 그 교회의 여러 상태들에 대한 일종의 설명이나 평가. 이들 숫자들에는 오랜 시간 설명해야 하는 아르카나(arcana), 숨겨진 지혜(秘義)가 들어있다

 

4절,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the days of man after he begat Seth were eight hundred years; and he begat sons and daughters.

 

487

(days)이 일반적으로 때와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을 1장에서(AC.23) 보여드렸는데요, 거기에 나오는 창조의 ‘’은 무슨 다른 걸 의미하지 않습니다. 말씀에서 ‘’을 가지고 ‘항상(all time, all units of time)을 표현하는 건 굉장히 자주 있는 일입니다. 본 구절과 이어지는 구절들(5, 8, 11, 14, 17, 20, 23, 27, 31절)을 보면 아주 분명한 것처럼 말입니다. 위 구절들을 보면, 각 구절마다 해당 시대들의 일반적 상태들(the states of the times) 역시 ‘’을 가지고 표현하며, 여기에 ‘(years)까지 등장하면, 이 일련의 해(the seasons of the years), 곧 이 해로 표현된 기간(the time spans)을 통해서는 그 당시 상태들의 퀄러티(the qualities of the states, the nature of the states), 그러니까 특별한 상태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That by “days” are signified times and states in general, was shown in the first chapter, where the “days” of creation have no other signification. In the Word it is very usual to call all time “days,” as is manifestly the case in the present verse, and in those which follow (5, 8, 11, 14, 17, 20, 23, 27, 31); and therefore the states of the times in general are likewise signified by “days”; and when “years” are added, then by the seasons of the years are signified the qualities of the states, thus states in special.

 

※ 예를 들어, 아담의 경우,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5절) 하고 있는데, 여기 나오는 ‘구백삼십’이라는 숫자는 실제 사람 나이가 아닌, 그 시대, 곧 ‘아담’이라는 태고교회의 상태라는 것입니다. 즉 천사들은 ‘구백삼십’이라는 숫자를 통해 ‘아, 태고교회는 저런 교회였구나!’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으로는 단지 ‘구백삼십’이라는 겉 글자, 겉뜻, 숫자만 보일 뿐이지만, 천사들한테는 오히려 이런 숫자는 안 보이고, 대신 그 속에 담긴 속뜻, 곧 아르카나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태고인들은 자신들의 어떤 특별한 숫자들을 가지고 그걸로 그 교회와 관련된 여러 가지를 상징했습니다. 그 숫자들은 예를 들면, ‘’(3), ‘일곱’(7), ‘’(10), ‘열둘’(12) 및 이들을 서로 섞어서 생성되는 많은 숫자들인데, 그들은 이 숫자들을 가지고 그 교회의 상태들을 요약, 설명했지요. 이런 이유로, 이들 숫자들에는 오랜 시간 설명해야 하는 아르카나(arcana), 숨겨진 지혜(秘義)가 들어있습니다. 숫자들은 그 교회의 여러 상태들에 대한 일종의 설명이나 평가였습니다. The most ancient people had their numbers, by which they signified various things relating to the church, as the numbers “three,” “seven,” “ten,” “twelve,” and many that were compounded of these and others, whereby they described the states of the church; wherefore these numbers contain arcana which would require much time to explain. It was an account or reckoning of the states of the church.

 

※ 즉, 숫자들은 해당 교회의 여러 상태들을 평가, 표현하는 어떤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천사들의 지혜는 우리의 지혜를 측량할 수 없을 만큼 초월, 예를 들면, 우리가 몇 시간을 말해야 하는 내용을 단 한 마디, 단 한 문장으로 전달한다고 하는데 아마 이 숫자 이야기가 바로 그런 것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같은 양상이 말씀 여러 군데서 발생하는데요, 특히 예언서입니다. 유대교회의 제의들(祭儀, rites)을 보면, 그 안에도 역시 ‘몇 번(, times) 및 ‘어느 정도의 양(, measures)이라는 두 종류의 숫자들이 있었습니다. 가령, 번제(燔祭, sacrifices), 소제(素祭, meat offerings), 봉헌물(oblations) 및 다른 것들과 관련되는 것들인데, 다들 그 드려짐에 따라 그곳의 거룩한 무언가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팔백’(800)이라는 숫자 및 다음 절에 나오는 ‘구백삼십’(930)이라는 숫자, 그리고 이어지는 구절들에 나오는 햇수들에 들어있는 것들, 즉 그들 고유의 일반적 상태에 적용된, 그들 교회 상태에 생긴 수많은 변화들은 일일이 나열하기엔 그 수가 너무 많습니다. 앞으로 다루게 될 부분에서, 주님의 신적 자비로 기회를 보아 숫자 ‘열둘’(12)까지 단순 숫자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보여드릴 텐데요, 이 단순 숫자들의 의미를 알 수 있기 전까지는, 다른 그보다 더 큰 합성수들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 겁니다. The same thing occurs in many parts of the Word, especially the prophetical. In the rites of the Jewish church also there were numbers, both of times and measures, as for instance in regard to the sacrifices, meat offerings, oblations, and other things, which everywhere signify holy things, according to their application. The things here involved, therefore, in the number “eight hundred,” and in the next verse, in the number “nine hundred and thirty,” and in the numbers of years in the verses following—namely, the changes of state of their church as applied to their own general state—are too many to be recounted. In a future part of this work, of the Lord’s Divine mercy we shall take occasion to show what the simple numbers up to “twelve” signify, for until the signification of these is known, it would be impossible to apprehend the signification of the compound numbers.

Posted by bygracetistory
,

날들(, days), ‘해들(, years), 자녀들(子女, sons and daughters)의 속뜻

 

4절,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the days of man after he begat Seth were eight hundred years; and he begat sons and daughters.

 

486

날들(, days)은 일반적으로, ‘해들(, years)은 구체적으로 때들과 상태들(times and states)을 의미하며, ‘자녀들(子女, sons and daughters)은 그들이 지각했던 진리들과 선들을 의미합니다. By “days” are signified times and states in general; by “years,” times and states in special; by “sons and daughters” are signified the truths and goods which they perceived.

Posted by bygraceti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