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에는 레벨, 곧 수준 차이가 있으며, 어떤 기쁨의 가장 깊은 레벨은 다른 기쁨의 가장 바깥이나 중간에도 못 미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누가 자신의 가장 내적 기쁨을 받으면 그는 그 자신의 천국 기쁨 가운데 있는 것이며, 그 이상 무슨 내적 기쁨을 받으면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데 그때는 그 기쁨이 그에게 고통이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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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기쁨의 본질 알기를 무척이나 갈망하던 어떤 영들이 있었는데, 그래서 그들은 허락을 받아 그들 본성의 가장 깊은 내면을 지각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수준으로는 도저히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최대치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천사적 기쁨이 아니었고, 천사적 기쁨 중 기껏해야 가장 낮은 것이라고나 할까요? 이런 것이 제게 허락되어 그들의 기쁨이 어떤 것인지 지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주 잠깐이지만 오히려 냉기마저 느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도저히 천국의 기쁨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도, 그러나 그들로서는 그것이 가장 깊은 내적 기쁨이었고, 그들은 그것을 가장 깊은 내적 천국의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실로 분명한 것은, 기쁨에는 레벨, 곧 수준 차이가 있으며, 어떤 기쁨의 가장 깊은 레벨은 다른 기쁨의 가장 바깥이나 중간에도 못 미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누가 자신의 가장 내적 기쁨을 받으면 그는 그 자신의 천국 기쁨 가운데 있는 것이며, 그 이상 무슨 내적 기쁨을 받으면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데 그때는 그 기쁨이 그에게 고통이 되기 때문입니다. Certain spirits longed to know the nature of heavenly joy, and were therefore allowed to perceive the inmost of their own, to such a degree that they could bear no more; and yet it was not angelic joy, being scarcely equal to the least angelic joy, as was given me to perceive by a communication of their joy. It was so slight as to be as it were chilly, and yet being their inmost joy they called it most heavenly. From this it was evident not only that there are degrees of joys, but also that the inmost of one scarcely approaches the outmost or middle of another, and that when anyone receives his own inmost joy, he is in his heavenly joy, and cannot endure that which is still more interior, for it becomes painful.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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