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한 분이시다(God is One) (1)(DLW.23, 2023/6/8)

 

 

오늘부터는 하나님에 관한 두 번째 주제,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God is One) 첫 번째 시간입니다.

 

AC.23

인간 지혜의 모든 것은 ‘온 우주의 창조주이신 한 분 하나님이 계신다’라는 신관(神觀)으로 연합하는데요, 그 모습은 마치 이것을 중심으로 모여드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결과적으로, 사람은 이와 달리는 생각하지도, 그리고 할 수도 없는데요, 이것은 이해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한테서나 다 볼 수 있는 본성이지요. 만일 건전한 이성을 가진 사람에게 우주의 창조주가 두 분이라고 말하면, 당신은 그가 품는 반감을 느끼시게 될 텐데요, 이건 아마도 그의 귀에 들리는 말만으로부터, 그리고 인간 이성의 모든 것이 이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라는 신관으로 연합, 이 신관을 중심으로 모여드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첫째는, 이성적, 합리적으로(rationally)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그 자체로 볼 때, 사람의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일반적인 본성상, 인간의 이성은 바로 이 능력에 의존하는데요, 이 본성으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라는 걸 직접, 그러니까 마치 스스로 보는 것처럼 보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 능력에 의해 사람은 천국의 빛 안에 있거나 그가 가진 대부분의 생각들을 거기서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라는 진리는 천국 빛으로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진리인데요, 그렇지 않은 때는 그 능력으로 인간 이해의 낮은 부분들(the lower parts of his understanding)이 왜곡되었을 때입니다. 그런 사람은 실제로는 그 능력을 부여받았지만, 그 낮은 부분들에 가해진 왜곡으로 인해 그걸 반대로 돌리고, 결국 그로 인해 그의 이성은 불건전해지지요. (DLW.23) All things of human wisdom unite, and as it were center in this, that there is one God, the creator of the universe; consequently a man who has reason, from the general nature of his understanding, does not and cannot think otherwise. Say to any man of sound reason that there are two creators of the universe, and you will be sensible of his repugnance, and this, perhaps, from the mere sound of the phrase in his ear; from which it appears that all things of human reason unite and center in this, that God is one. There are two reasons for this. First, the very capacity to think rationally, viewed in itself, is not man’s, but is God’s in man; upon this capacity human reason in its general nature depends, and this general nature of reason causes man to see as from himself that God is one. Secondly, by means of that capacity man either is in the light of heaven, or he derives the generals of his thought therefrom; and it is a universal of the light of heaven that God is one. It is otherwise when man by that capacity has perverted the lower parts of his understanding; such a man indeed is endowed with that capacity, but by the twist given to these lower parts, he turns it contrariwise, and thereby his reason becomes unsound. (DLW.23)

 

※ 윗글은 스베덴보리 저, ‘신적 사랑과 지혜(Angelic Wisdom concerning Divine Love and Wisdom, 1763) 1장, ‘창조주(The Creator)의 일곱 번째 주제, ‘만물이 말미암는 한 분의 신-인이 계신다(There is one God-man, from whom all things come)에 나오는, 책 전체 글 번호로는 23번 글입니다.

 

 

아래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보태는 몇 가지 설명 및 오늘의 권면들입니다.

 

1. ‘이해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해하는 능력’으로 좀 풀어 번역한 이 ‘이해(understanding)는 ‘의지(will)와 함께 사람을 구성하는 두 키워드입니다. 사람이 사람인 것은 이 둘이 있어서입니다. 이 둘은 주님의 신성과 상응하는데요, 즉 주님의 신성 중 선은 사람의 의지와, 그리고 진리는 사람의 이해, 즉 이해하는 능력과 상응합니다. 참고로, 주님은 사람의 의지 속으로는 직접 들어가시지만, 사람의 이해, 생각 속으로는 의지를 거쳐 간접적으로 들어가시는데요(HH.26), 저는 이걸 ‘가슴 신앙’, ‘머리 신앙’이라고 종종 번역합니다. 대략적으로는, ‘사랑(love, charity), ‘(good), ‘의지(will), ‘애정(affection), ‘’, ‘’, ‘’, ‘천적(celestial, heavenly) 등이 한 흐름이고요, ‘신앙(faith), ‘진리(truth), ‘이해하는 능력(understanding), ‘이성(reason, rational), ‘’, ‘포도주’, ‘’, ‘영적(spiritual) 등이 또 다른 흐름입니다.

 

참고로, ‘하나 됨’, ‘한 몸’이라는 것은, ‘의지’는 ‘이해’의 의견을 사랑으로 받들고, ‘이해’는 ‘의지’가 원하는 것을 사랑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2. ‘인간 이해의 낮은 부분들(the lower parts of his understanding)

 

창세기 6장 16절 말씀,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에 보면, ‘상 중 하 삼층으로’라는 표현이 나오는데요, 아래, 이 구절 전체의 속뜻을 보면서 위 표현을 짐작해 봅니다.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는 지적 부분(the intellectual part)을, ‘그 문은 옆으로 내고’는 청각(hearing)을,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는 지식(knowledge, scientifica), 이성(reason, rationalia), 그리고 이해(understanding, intellectualia)에 관한 것을 각각 의미합니다. (AC.651)

 

창6:9-22은 거듭나기 전 ‘노아’라는 교회의 상태에 관한 내용인데요, 특별히 16절은 그 교회가 가진 이해에 관련된 내용으로서, 갑작스런 이런 내용에 좀 당황스러우시겠지만, 이처럼 사람의 이해에는 세 가지 전혀 다른 부분들이 있다는 정도로만 우선은 알려드리며, 그러므로 ‘인간 이해의 낮은 부분들’인 ‘지식’, 특히 세상의 학습을 통해 습득한 ‘지식’을 주님의 계시보다 우선하는 태도,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왜곡’의 시작이요, 근원임을 직시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질서, 순서는 반드시 주님으로부터 출발, 사람의 겉 사람에 도착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정반대의 길을 추구한 케이스들이 모두 ‘가인의 삶’, ‘각 교회 시대의 종말’ 및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3. 다음은 이런 내용들에 대하여 천사들은 모든 걸 이해하는 반면, 우리는 왜 이토록 어둡고 어려운가 하는 말씀을 좀 드리면서 오늘 말씀을 마칠까 하는데요, 아래는 천국 천사들이 왜 그토록 지혜로운가 하는,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 30장, ‘천국 천사들의 지혜(The Wisdom of the Angels of Heaven) 267번 글입니다.

 

천사들이 그런 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내면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지혜는 다른 모든 완벽성과 마찬가지로 내적으로 갈수록 증가하므로, 내면이 열리는 정도만큼 지혜가 늘어나는 것이다. 모든 천사에게는 생명의 세 단계가 있고, 이것은 세 천국에 상응한다. 내면의 첫 단계가 열린 이들은 일층천, 즉 가장 외적인 천국에 있다. 내면의 둘째 단계가 열린 이들은 이층천인 중간 천국에, 내면의 셋째 단계가 열린 이들은 삼층천인 가장 내적 천국에 있다. 천국 천사들의 지혜는 이들 단계에 적합한 것이다. 따라서 가장 내적 천국 천사들의 지혜는 중간 천국 천사들의 지혜를 측량할 수 없이 초월하고, 중간 천국 천사들의 지혜는 가장 외적 천국 천사들의 지혜를 그렇게 초월한다. 이런 차이가 있는 것은, 더 높은 단계에 속한 것은 세부적이고, 낮은 단계에 속한 것은 일반적이며, 일반적인 것은 세부적인 것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세부적인 것은 일반적인 것을 수천수만 배 능가한다. 그러므로 더 높은 천국 천사들의 지혜도 낮은 천국 천사들의 지혜에 비하면 그 정도로 차이가 난다. 같은 이치로, 낮은 천국 천사들의 지혜는 사람의 지혜에 비하면 그런 차이가 난다. 사람은 육체적인 상태에 있고, 또한 육체의 감각에 속해 있으며, 육체의 감각은 낮은 단계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면 감각적인 사람들, 즉 감각의 대상이 되는 것에 그들 사고의 범위를 국한한 사람들의 지혜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다. 말하자면, 그들은 지혜가 하나도 없고, 단지 지식만 있다. 그러나 감각적인 것을 넘어 그들의 사고를 고양시킨 사람들은, 특히 그 내면이 천국 빛을 받는 단계로까지 열린 사람들은 이와 다르다. (HH.267)

 

 

내용이 다소 어렵고 난해하더라도 위 3번 글을 읽어 보시고,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힘을 내셔서, 주님께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천국 빛을 구하시고, 해바라기와 같이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곧 천사들의 내면을 비추는 빛이 우리에게도 비춰 이 영광의 말씀들, 내용들이 이해되기 시작할 줄 믿습니다.

 

아멘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2023-06-08(D5)

한결같은교회 변일국 목사

 

Posted by bygracetistory
,

4-5절, 4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And God saw the light, that it was good; and God distinguished between the light and the darkness. 5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And God called the light day, and the darkness he called night.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first day.

속뜻, 주님은 빛이시고, 선이십니다. 사람 안에 두 가지, 곧 주님으로 말미암은 것은 빛, 곧 낮이고, 사람에게 속한 것은 어둠, 곧 밤입니다.

 

AC.21

빛을 ‘선’(good)이라고 합니다. 빛은 주님으로 말미암으며, 주님은 선 그 자체이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어둠’(darkness)은 모든 것, 곧 사람이 새롭게 잉태되어 태어나기 전, 그동안 빛처럼 보여 그런 줄 알았던 모든 걸 말하는데요, 사람이 새롭게 태어나기 전에는 악은 선처럼 보이고, 거짓은 진리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실상은 이들 악과 거짓은 어둠, 곧 사람한테나 어울리는, 그래서 여전히 사람 안에 있는 걸로만 구성되는 어둠입니다. 주님에게 속하는 건 그게 뭐든지 다 ‘낮’(day)과 비교됩니다. 빛에 속하기 때문이지요. 반면, 사람의 것(man’s own)은 뭐든지 다 ‘밤’(night)과 비교됩니다. 어둠에 속하기 때문인데요, 이런 비교는 말씀에서 자주 나옵니다. Light is called “good,” because it is from the Lord, who is good itself, The “darkness” means all those things which, before man is conceived and born anew, have appeared like light, because evil has appeared like good, and the false like the true; yet they are darkness, consisting merely of the things proper to man himself, which still remain. Whatsoever is of the Lord is compared to “day,” because it is of the light; and whatsoever is man’s own is compared to “night,” because it is of darkness. These comparisons frequently occur in the Word.

 

Posted by bygracetistory
,

3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속뜻, 거듭남의 초기, 사람은 빛 되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선과 진리에 대하여 눈을 뜨기 시작합니다.

 

AC.20

거듭남이 시작된 사람의 첫 번째 상태는 그가 선과 진리에 대해 이것들은 뭔가 더 높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거의 외적(外的, altogether external, 겉)이기만 한사람들은 선과 진리라는 게 무엇인지조차 모르는데요, 그들은 자기 사랑(the love of self)과 세상 사랑(the love of the world)에 속한 모든 것이 선이며, 그런 사랑들에게 호의적인 게 진리라는 환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선은 악이며, 그런 진리는 거짓임을 그들은 못 깨닫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사람이 새롭게 잉태되면서 그는 자기의 선은 선이 아니며, 또 그가 빛 되신 주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갈수록 주님은 선과 진리 그 자체이신 분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주님의 살아계심을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함을 주님은 요한복음에서 친히 가르치셨습니다. The first state is when the man begins to know that the good and the true are something higher. Men who are altogether external do not even know what good and truth are; for they fancy all things to be good that belong to the love of self and the love of the world; and all things to be true that favor these loves; not being aware that such goods are evils, and such truths falsities. But when man is conceived anew, he then begins for the first time to know that his goods are not goods, and also, as he comes more into the light, that the Lord is, and that he is good and truth itself. That men ought to know that the Lord exists he himself teaches in John: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요8:24) Except ye believe that I am, ye shall die in your sins. (John 8:24)

 

또 주님은 선 그 자체, 즉 생명이시며, 진리 그 자체, 즉 빛이시라는 사실과, 그 결과, 주님으로 말미암지 않은 그 어떤 것도 선도 아니요, 진리도 아니라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선언하십니다. Also, that the Lord is good itself, or life, and truth itself, or light, and consequently that there is neither good nor truth except from the Lord, is thus declared:

 

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3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9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요1:1, 3-4, 9)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God was the Word. All things were made by him, and without him was not anythin made that was made. In him was life, and the life was the light of men. And the light shineth in darkness. He was the true light, which lighteth every man that cometh into the world. (John 1:1, 3–4, 9)

 

Posted by bygraceti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