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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4.18 성독(聖讀).'성 프란치스코'.6장, '교황 인노센트 3세 회견' (1)

제 6 장

교황 인노센트 3세 회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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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프란치스코와 그 형제들은 실제로 이렇게 살았다. 그들은 나병원에서 일하기도 하고, 때로는 농부들의 일손을 도와주기도 했지만, 보수로는 그날 일용할 양식과 한 바가지 물 이외에 다른 보수는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거리는 많지 않았고, 어떤 집에선 그들 형제들을 맞아 주지 않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그들이 거처하는 무너져가는 음침한 움막집은 비가 새어 바닥이 온통 질퍽거렸다. 그 속에서 형제들은 누더기 옷을 걸치고, 가련하게 앉아 있었다. 하루 종일 먹지 못한 채 몸을 녹일 불도 없었고, 심심풀이할 책 한 권조차 없이 지냈다.

 

이런 생활에 못 견뎌 중도에 탈락한 사람들이 물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초의 제자들 중에서 중도에 탈퇴한 자는 '모자쓰기 죠반니' 한 사람 밖에는 없었다. 먹을 것이 없으면 나무뿌리 같은 것을 캐어 씹으면서도 꾸준히 잘 참았다.

 

스승의 교훈대로 형제들은 금전에는 전혀 무관심했다. 어떤 이가 많은 돈을 뽀르치운꼴라 제대 위에 놓고 갔는데, 얼마 후에 그 돈은 길가 쓰레기 더미에 버려졌었다. 남을 구제할 것이 없으면, 자기네 입은 옷이나 두건이나 옷 소매를 잘라서 희사하기도 했다. 누가 일을 부탁하면, 즉시 어디나 가서 해주었다.

 

그러면서도 형제들끼리는 서로 무척 사랑했다. 한번은 두 형제가 전도 순례를 하고 다니는데 불량한 사람들이 그들을 미치광이로 알고 몰려와 돌을 던졌다. 두 형제는 서로 방패가 되어 동료 형제의 몸을 보호해 주려고 자기 등을 돌받이로 만들려고 서로 애썼다.

 

만일 형제끼리 경솔한 말로 남의 맘을 상하게 했으면 그와 화해하게 되기까지 자기를 꾸짖었다. 자기 잘못을 뉘우칠 때는 욕한 사람은 욕 먹은 사람의 발에 입을 맞추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에는 쓸데없는 이야기나 좋지 못한 세속함 같은 것은 없었다. 길 가다가 여자들이 있을 때는 그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눈을 내려뜨고 땅만 보며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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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대에 살았던 마태오 빠리(1259년 사망)가 남긴 연대기에 의하면, 그들이 교황을 처음으로 만나러 들어갔을 때, 교황의 태도는 매우 냉담했다. 프란치스코는 교황의 라테란 궁전에 거리낌없이 들어가 교황 앞에 섰다. 그러나 그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거지같은 옷차림에 머리에는 빗지 않아 흐트러지고, 커다란 검은 눈썹을 한 초라한 꼴이었기 때문에, 교황은 일부러인지 몰라도 그를 돼지치기인 줄로 잘못 안 체 했다. 천년 묵은 큰 포도나무 줄기 같은 가톨릭 교회를 대변하는 권위자, 손에 향수를 바른 교황 앞에 엎드린 프란치스코는 발과 몸에서 고약한 악취나는 탁발승이었다.

 

교황은 프란치스코에게 그의 계획을 말해보라고 했다. 프란치스코의 설명은 요령이 없었다. 교황은 "회칙 이야기는 그만 하시오. 당신의 돼지 있는 데로 돌아가 거기서나 마음대로 설교하시오." 하고 냉정하게 말했다. 솔직한 프란치스코는 다시 더 간청하는 말을 하지 않고 교황 앞에서 물러나 돼지 우리로 뛰어가 돼지 똥으로 자기의 몸을 더럽힌 후, 다시 교황 앞에 돌아와 섰다. "교황 청하, 말씀하신 대로 하고 왔습니다. 이번에는 제발 저의 소원을 들어주십시오." "세상에 이런 사람도 보았나! 이 사람은 내가 만나 본 수많은 사람들 중에 독특한 사람이다." 이때 교황은 이 청원자가 반역자나 이단자가 아님을 인정하고, 초면에 그렇게 냉대한 것을 반성하면서 프란치스코를 돼지 똥으로 더러워진 몸을 씻으러 보내면서 추기경들과 의논해 보겠다고 약속하며, 아무 결제도 않고 물러가게 했다. 프란치스코의 실망은 대단했을 것이다. 교황으로서의 완만한 태도나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에 염려가 되었으나 자기로서 할 말은 다 한 것이고, 다음 차례의 대변을 위한 준비는 유일한 원천인 기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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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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